짧아지는 수면시간과 늘어나는 불면 인구가 침대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숙면을 위한 소비가 확산하며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수면과 경제학의 합성어)’가 새로운 소비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가구를 넘어 수면 환경에 투자하는 이들이 늘면서 국내 매트리스 시장은 2조원대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혼부부와 교체 수요층을 중심으로 고가 프리미엄 제품이 빠르게 확산하자 가구업계도 첨단기술과 케어 서비스를 앞세워 ‘숙면 산업’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19일 시장조사기관 IMARC 그룹에 따르면 국내 매트리스 시장 규모는 2024년 7억8090만달러(약 1조1100억원)에서 2033년 14억9782만달러(2조1300억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수면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수면의 질이 낮아지면서 인체공학적 디자인, 메모리폼 등 매트리스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 통계청의 ‘2024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10세 이상 국민의 수면시간은 8시간4분으로, 2019년(8시간12분)보다 8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감소한 수치다. 전 연령대에서 수면시간이 줄었고, 60세 이상(-14분)에서 특히 감소폭이 가장 컸다.
잠 못 이루는 국민도 크게 증가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 응답자 비율은 2019년 7.3%에서 2024년 11.9%로 4.6%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60세 이상 국민 5명 중 1명은 수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 질 개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프리미엄 침대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주요 침대·가구업체들은 단순한 제품 경쟁을 넘어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하고, 소재·설계·서비스 전반에서 차별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시몬스·에이스·한샘·신세계까사 등은 모두 최상위급 라인업을 확대하며 프리미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세계까사 마테라소 헤리티지 컬렉션 매트리스 ‘에보니’. 신세계까사 제공 신세계까사의 프리미엄 수면 브랜드 ‘마테라소’가 지난 7월 중순 선보인 럭셔리 매트리스 ‘마테라소 헤리티지’ 컬렉션은 9월 매출이 전월 대비 20% 증가했다. 1000만원대 초고가 라인 ‘에보니’는 같은 기간 판매량이 120% 이상 늘었다. 신세계까사 관계자는 “수도권 주요 매장에서 상담 예약 건수도 전년 대비 크게 늘며 현장 반응 역시 뜨겁다”고 전했다. 브랜드 최상위 라인업인 ‘마테라소 헤리티지’는 소재와 설계에서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 제품들에 견주는 고급사양을 구현했다. 세계적 강철 코일 전문사 레게트앤플랫의 ‘칼리코 코튼 포켓 스프링’을 국내 브랜드 최초로 도입해 스프링 간 잡음을 줄이고 통기성을 높였다. 또한 19세기 유럽 황실 침대에 쓰이던 고급 천연 소재 ‘말총’을 더했다. 외피 원단은 실크와 캐시미어가 혼합된 비스코스를 사용했다.
‘헤리티지’와 조화를 이루는 프리미엄 침대 프레임 출시도 성장세를 이끌고 있다. 특히 ‘에보니’ 매트리스와 모던 클래식 스타일의 ‘아스터’ 프레임 조합은 통일된 공간 미감을 중시하는 트렌드와 맞물려 젊은 신혼·이사 고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프리미엄 라인 전용 케어 서비스 역시 구매 후 관리까지 책임지는 차별화 포인트다.
콘래드 서울 객실에 비치된 ‘시몬스 뷰티레스트’. 시몬스 제공 침대 업계 1위 시몬스의 프리미엄 제품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몬스가 2016년 출시한 최상위 라인 1000만원대 ‘뷰티레스트 블랙’ 판매량은 출시 1년 만인 2017년 매출 100억원을, 2018년에는 3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뷰티레스트 블랙의 연 성장률은 20%대에 달한다.
에이스침대 최상위 매트리스 브랜드 ‘에이스 헤리츠’. 에이스침대 제공 에이스침대의 최상위 매트리스 브랜드 ‘에이스 헤리츠’의 올 1~8월 누적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86.5% 증가했다. 주력 모델인 ‘플래티넘 플러스’는 전체 판매의 62.7%를 차지하며 브랜드 성장을 견인했다. 코웨이 비렉스 침대의 프리미엄 라인업인 ‘비렉스 스마트 매트리스’의 판매량은 업그레이드된 신제품 인기에 힘입어 전년 동기 대비 80% 이상 늘었다. 씰리침대의 대표 프리미엄 라인 ‘엑스퀴짓’의 지난해 매출은 또한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샘도 프리미엄 매트리스 라인인 ‘포시즌’도 2018년 출시 이후 전체 매트리스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상승해 현재 절반에 해당하는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김희정 기자 h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