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맥]유러피안 드림'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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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맥]유러피안 드림'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동안 유럽은 자유주의 정치경제 통합, 다문화 수용, 세계주의, 평화와 조화를 중시하는 공동체 정신 등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관 고양을 세계적으로 널리 전파해 왔다.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2004년 쓴 책 '유러피안 드림'에서 유럽연합(EU) 출범과 발전이 유러피안 드림을 실현할 것으로 예측했다.


유럽 국가들은 1, 2차 세계대전과 미소 냉전 경험을 통해 상호성 인정, 민주주의와 평화 유지, 협력과 지역 경제통합, 환경 보호 등을 중시하는 철학적 기반과 이를 주창하는 시민사회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형성했다. 이런 이유로 우리 국민들은 유럽 국가에 대해 대체로 높은 호감을 갖고 있다. 또 미국에 비해 대체로 유럽과는 원만한 통상관계를 유지해왔다.


최근 10여 년 사이 EU는 비유럽 국가에 대한 차별적인 조치를 자주 발동했다. 대외적으로는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통상정책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보호무역적인 정책을 펼치거나 이중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례가 많았다. 철학적인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은 산업 보호 목적이다.


EU도 미국처럼 경제안보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단일시장과 공정 경쟁을 강조하는 역내와 달리 역외 시장에는 자국 이익 중심의 규제와 무역구제조치를 적극 활용한다.


최근 EU는 규제 기반의 보호주의(Regulatory Protectionism)를 구사해 왔다. 대표적으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을 통해 수입품에 포함된 탄소배출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과하고자 한다. 아무리 기후온난화 대응 명분을 내세워도 EU 내 기업 보호를 위한 새로운 관세장벽임이 틀림없다. '에코디자인''과불화화합물 규제''배터리법''핵심 원자재법''디지털플랫폼 규제''인공지능(AI) 법''역외보조금 조치' 등 많은 규제 보호주의 수단을 최근 몇 년 사이에 도입했다.


EU는 자유무역과 공정한 통상질서, 지속가능 발전을 선도한다고 선언하지만 실제 정책 및 협정 집행 단계에서는 보호주의, 복잡한 절차, 이중 잣대, 실효성 저하 등의 현실적 괴리가 반복적으로 제기한다. 더구나 미 트럼프 행정부의 극단적인 자국 우선주의 통상정책을 비난했던 EU는 미국과 같은 수준으로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이달 초 EU 집행위원회가 철강 수입쿼터(무관세 할당)를 47% 삭감해 1830만t으로 제한하고 쿼터 외 철강에 대해서는 관세율을 현행 25%에서 50%로 올리는 긴급 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했다. 유럽의회 및 회원국들의 동의를 거쳐야 확정되기는 하나 미국(50%)에 이어 EU까지 철강 관세를 높임에 따라 국내 철강업계의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국제통상 규범에 따라 긴급 수입제한 조치는 일몰 시점이 정해져 있다. 이 쿼터는 내년 6월에 종료해야 한다. EU는 한국 철강산업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미국과 EU의 쿼터 축소와 관세 인상은 국내 철강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른 품목으로 유사 조치가 남발될 수 있다.


철강에 있어 우리나라는 2011년 EU와 발효시킨 자유무역협정(FTA)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및 FTA에서 세이프가드 발동을 허용하지만 발동 국가는 수출국에 대해 보상 의무를 진다. EU가 불리한 것이다. 우리 통상 당국은 EU와의 쿼터 협상에 매달릴 게 아니라 EU 조치의 부당성을 국제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우리보다 수출액이 많은 터키, 중국 등과도 협력해 EU 조치의 부당성을 문제 삼아야 한다. 또 자동차 등 우리 철강 수요 기업이 진출한 체코, 폴란드 등의 정부와 협의해 EU 차원의 결정을 저지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내 철강산업 전반을 지원하는 'K-스틸법' 역시 조속히 제정돼야 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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