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맥]예견된 회색 코뿔소, 중국 희토류 무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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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맥]예견된 회색 코뿔소, 중국 희토류 무기화

미중 간 무역 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최근 발표된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전략이었지만 각국의 실질적 대응은 미흡했다. '거대한 진동과 소리로 예측 가능한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위기'를 비유적으로 '회색 코뿔소'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처럼 희토류 문제 역시 대표적인 회색 코뿔소 사례로 꼽힌다.


희토류의 전략적 위험성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2010년 일본이 센카쿠 열도 인근에서 중국 어선을 나포하자, 중국이 보복 조치로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면서 세계는 그 파급력을 실감했다. 이후 각국은 원료 공급망 다각화, 대체 물질 개발, 재활용 활성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15년이 지난 지금도 세계 각국의 중국산 희토류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중국은 희토류를 전략자산으로 인식하고 공급망 장악을 위해 국가 차원의 강력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덩샤오핑이 1992년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언급한 이후 30년 이상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한 결과,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70%, 정제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채광부터 고순도 정제까지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며 특히 디스프로슘, 테르븀 등 중희토류는 독점에 가깝다.


이번 중국의 수출통제 강화는 미국이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제한할 때 적용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과 유사한 구조를 띤다. 중국 내 생산품뿐만 아니라 중국산 희토류가 0.1% 이상 포함된 해외 생산 제품까지 별도 수출허가를 받도록 규정해, 글로벌 무역 규칙 자체를 재설정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미국은 폐쇄했던 희토류 광산을 재가동했고, 전쟁부 등을 통한 정부 지원으로 희토류 생산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일본 또한 공급망 다변화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도 33종의 전략광물을 핵심관리 대상으로 삼고 있고, 다자 협의체인 핵심광물 안보 파트너쉽(MSP)에도 참여하고 있지만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중국의 새 규제는 반도체, 배터리를 포함한 우리 산업 전반에 큰 부담을 초래하고,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촉발된 것과 같은 공급망 위기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경제 안보와 기술주권 확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희토류를 포함한 희귀금속의 안정적 확보뿐만 아니라 대체 물질 개발, 재활용 역량 강화 등을 국가 핵심 전략목표로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정치적 변동과 무관하게 지속 가능한 10년 이상의 장기적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은 수십 년간 희토류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국가적 역량을 축적해 온 점을 주목해야 한다.


둘째 희토류 대체 물질을 개발하고 핵심 소재 재활용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해 임무지향형 정부 연구개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차세대 반도체, 양자컴퓨터, 핵융합 발전 등 미래 신산업 분야의 핵심 소재 공급망 구축도 국가 전략 수립 단계에서 치밀하게 고려해야 한다.


셋째, 희토류 관련 기술 개발은 국내 산업 생태계 육성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특히 소재 재활용 분야는 자원 회수가 어렵고 초기 생산 원가가 높은 데다 수요가 불확실해 시장 실패가 빈번히 일어나는 영역이다. 국가 안보와 연계한 전략 비축 정책을 병행하며, 재활용 산업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희토류 문제는 단순한 자원 이슈를 넘어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미중 간에 일시적 타협을 모색할 수 있겠지만, '희토류의 무기화'는 중국이 언제든지 꺼내들 수 있는 경제적 책략 카드다. 우리가 이번 회색 코뿔소를 외면한다면, 다음 충돌의 여파는 더욱 커질 것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원장 오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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