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보수색을 강화하면서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맞붙었던 인사들을 대거 포함한 ‘용광로 내각’을 출범시킨다. 앞선 주요 당직 인선에서 자신을 지원했던 이들을 중용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기하라 미노루 전 일본 방위상(왼쪽), 고이즈미 신지로 전 농림수산상. 요미우리신문 등은 21일 내각 인사 발표에 앞서 다카이치 총리가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으로 기하라 미노루 전 방위상을 기용할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기하라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우익 성향 정치인으로, 강경 우파 노선인 다카이치 총리와 가까운 관계다. 그는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 시절인 지난해 8월15일 현직 방위상으로는 3년 만에 처음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시 한국 정부가 유감을 표명하자 “지극히 내정(內政)의 문제로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 총재선거에서 경쟁한 후보들도 입각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고이즈미 신지로 전 농림수산상을 방위상으로 임명할 의향을 굳혔다고 NHK방송이 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인 그는 이번 총재선거에서 결선투표까지 올랐으나 다카이치 총리에게 패했다. 방송은 “고이즈미의 호소력에 기대하는 동시에 결선투표에서까지 다툰 인사를 기용함으로써 거당 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의원. 옛 기시다파이자 이시바 시게루 내각에서 관방장관을 지낸 하야시 요시마사 의원은 총무상으로, 옛 모테기파의 맹주인 모테기 도시미쓰 전 당 간사장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 역임했던 외무상으로 발탁될 것으로 보인다. 각료 및 당직 경험이 풍부한 두 사람을 내각에 배치해 안정감을 주겠다는 구상이다. 참의원(상원) 3선 여성 의원인 가타야마 사쓰키 전 지역활성화담당상은 재무상으로 임명된다. 이번 총재선거에서 다카이치 총리를 지원한 옛 아베파 출신이다. 엔화 약세를 골자로 한 재정 확장 정책론자인 다카이치와 달리 엔저에 부정적인 그의 기용 소식에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엔화 환율이 상승세로 돌아섰다.
최근까지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담당했던 아카자와 료세이 전 경제재생상은 경제산업상으로 자리를 옮긴다. 미·일 협상 과정에서 형성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활용하면서 이시바 전 총리의 측근까지 끌어안는다는 이미지를 노린 것으로 해석된다.
도쿄=유태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