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없는도시, 메가샌드박스]⑮"규제 푼 도시가 미래를 선점한다"…메가샌드박스, 국가 실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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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없는도시, 메가샌드박스]⑮"규제 푼 도시가 미래를 선점한다"…메가샌드박스, 국가 실험의 시작

아시아경제 취재진이 중국 우한, 싱가포르, 두바이 등 세계 주요 실험도시를 직접 확인한 결과 산업의 활력을 되살리는 길은 하나로 모였다. 규제 완화 없이는 산업의 확장도, 지역의 도약도, 국가의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 각국의 사례는 정부의 과감한 규제 완화와 미래지향적 결단, 지방의 실행력, 자본과 상업성이 조화를 이루는 구조가 갖춰질 때 비로소 혁신이 현실이 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제 한국도 산업의 흐름을 새롭게 설계해야 할 때다. 정부는 규제 완화와 인프라 지원을 결합한 '메가 특구', 그리고 노후 산업단지 인근에서 신기술 실험이 가능한 '코리안 시티' 구상을 포함한 도시형 혁신 플랫폼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구상을 실현하려면 부처별로 흩어진 규제를 하나의 틀로 묶는 국가 단위의 '일괄(One-shot) 규제개혁'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질적 추진력을 확보하려면 총리급 이상의 컨트롤타워가 주도하고, 대통령실 차원의 조정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경제는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초동 본사에서 '규제 없는 도시, 메가샌드박스의 조건과 실행 전략'을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최일권 산업IT부장이 사회를 맡았으며, 이종명 대한상공회의소 산업혁신본부장, 정병규 국무조정실 규제혁신기획관, 박형곤 딜로이트컨설팅 파트너, 손보미 스타씨드 대표가 참석했다.



-메가 샌드박스의 개념과 필요성, 그리고 실행 전략을 우선 짚어보고자 한다.

△이종명 대한상공회의소 산업혁신본부장: 우리 제도는 '포지티브 시스템', 즉 정해진 것만 할 수 있는 구조다. 새로운 사업 모델을 내면 막히는 일이 많았다. 2018년 영국의 샌드박스 제도를 들여오면서 국무조정실이 한정된 지역에서 규제를 빠르게 우회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지금은 전 세계 50개국 이상이 시행 중이다. 기업 한 곳에 특례를 주면 평균 일자리 14개가 생기고 매출이 19억원 늘었다. 하지만 기업 단위로 푸는 방식보다 지역 단위로 묶어 더 큰 변화를 만드는 게 효율적이다. 그게 바로 메가샌드박스다. 일본의 '우븐시티', 두바이 등도 이름만 다를 뿐 비슷한 모델이다.



-딜로이트가 대한상공회의소의 메가샌드박스 기획을 함께했다.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뒀나.

△박형곤 딜로이트 컨설팅 파트너: 지금 제도는 '이건 된다'는 식의 화이트리스트 방식이라 새로운 시도에 맞지 않는다. 혁신은 정해진 틀 밖에서 시작되는데, 현 제도는 그걸 막는다. 스타트업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방향을 바꾸지만, 지금 샌드박스는 이름만 다를 뿐 기존 특구와 다를 게 거의 없다. 세제 혜택도 전국이 똑같고, 부산이나 대구나 조건이 비슷하다. 지자체별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세 가지로 접근했다. 먼저 지역균형이다. 수도권은 지원하지 않아도 몰리지만, 지방은 '영양제'가 필요하다. 무엇을 풀어줘야 지역이 살아나는지, 인프라를 중심으로 봤다. 다음은 글로벌 비교다. 싱가포르나 두바이처럼 도시 경쟁력으로 성공한 사례를 참고하고, 독일 함부르크의 암모니아 터미널이나 일본의 작은 섬이 문화를 기반으로 도시를 되살린 사례를 함께 봤다. 마지막은 유형화다. 메가샌드박스는 두 가지다. 하나는 국가가 인프라를 먼저 깔고 연관 기업과 정주 환경이 따라오는 '인프라형', 다른 하나는 주제를 정해 실험을 반복하며 기업이 모이는 '테스트베드형'이다. 함부르크는 전자, 일본의 섬은 후자의 대표적인 예다. 대형 인프라가 필요한 산업재는 정부투자 중심 '인프라형'이 맞고, 특산물·문화 자원은 '테스트베드형'이 적합하다. 신기술은 두 유형의 중간에서 단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어떻게 구상하나.

△정병규 국무조정실 규제혁신기획관: 샌드박스는 두 가지 형태다. 하나는 기업 단위로 특례를 주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지역에 특례를 줘서 그 안에 들어오는 기업이라면 누구나 혜택을 받는 방식이다. 메가샌드박스는 두 번째 방식이다. 기존 지역 규제특구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새로운 정책 틀로, 규제 완화를 하나씩 나누지 않고 세트로 묶어 주는 개념이다. 방향에는 공감한다. 다만 규모가 커지면 리스크도 커진다. 경제자유구역의 실패처럼 중앙정부와 지자체, 특구 간의 협력 구조가 핵심이다. 단순히 지정만으로 끝나면 안 되고, 유능한 인재 투입과 기업 유치가 계속돼야 한다. 정부는 법, 행정, 산업, 지역 전략을 나눠 연구용역을 맡길 계획이다. 과거처럼 '신청하면 해준다'는 식의 보텀업 방식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제는 국가 전략 차원의 개입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때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드러난 한계는.

△정: 샌드박스 제도는 처음부터 입법권 침해 논란이 있었다. 국회가 법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행정부가 예외를 줄 수는 없으니 기간과 조건을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2년+2년, 최대 4년만 허용됐다. 한국은 성문법 국가라 행정부 재량이 작고 사고가 나면 책임 공방이 생겨 공무원들이 위축됐다. 중앙부처가 어렵게 특례를 줘도 지자체나 경찰 단계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충분한 특례를 주지 못했고 성과도 제한적이었다.


효과를 내려면 규모를 키워야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2014년 국가전략특구법을 만들었고 규제를 패키지로 푸는 방식이었다. 의료·관광·농업 분야에서는 성과를 냈지만, 2020년 '슈퍼시티'는 주민들의 프라이버시와 안전 우려로 실패했다. 반면 도요타가 새 부지에 만든 '우븐시티'는 기업이 직접 도시를 짓고 입주자를 받는 구조라 사회적 반발이 없었다. 신도시는 수용성이 높았고 기존 도시는 합의가 어려웠다.

규제특례를 설계할 때는 과거 경제자유구역의 실패를 참고해야 한다. 일본의 제도가 왜 슈퍼시티에서 막혔는지, 리더십 부재 때문인지, 기존 도시에 신산업을 적용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인지 짚어야 한다. 결국 핵심은 지역 선정과 수용성이다. 산업 적합성과 주민 동의가 맞아야 성공한다. 종합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메가샌드박스도 이름뿐인 제도로 끝날 수 있다.



-기존 샌드박스에 붙은 '메가', 즉 '확대'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박: 핵심은 네 가지다. 첫째, 지금처럼 '이건 된다'는 식의 화이트리스트가 아니라, '이건 안 된다'만 정해두는 블랙리스트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둘째, 지원과 보상 방식을 바꿔야 한다. 외국 자본이 투자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셋째, 자격시험처럼 점수로 사업을 허가하는 방식을 줄이고, 실제 사업 성과로 평가해야 한다. 넷째, 정부가 다 짜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과 시민이 먼저 설계하고 정부는 그걸 지원하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


△정: 큰 방향에는 동의한다. 다만 지역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중요하다. 대기업 한 곳에만 의존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 먼저 1단계에서는 주민 동의와 기업의 투자 약속, 그리고 전문가 심사를 거쳐야 한다. 2단계에서는 국가 차원에서 그 지역이 메가샌드박스 패키지에 맞는지 검토하고, 3단계에서는 재정을 어디에 먼저 투입할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예전처럼 점수를 합산해 엉뚱한 지역이 선정되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기존 제도를 보완해 실효성을 높인 뒤 메가샌드박스로 가자는 접근은 어떤가.

△정: 메가의 핵심은 규제 완화와 인프라 계획을 함께 짜는 것이다. 지금처럼 규제를 하나씩 따로 풀어주는 방식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큰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세트로 묶어 추진해야 한다. 또 이런 결정을 내리려면 최소 총리, 최대는 대통령이 한 번에 승인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런 '원샷 의사결정 구조'가 바로 메가샌드박스의 핵심이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 지자체가 먼저 나서야 하나.

△정: 중앙정부는 국가 발전 전략을 세우고, 어떤 산업을 어디에서 어떤 조건으로 할지, 투자 규모와 규제 완화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지자체는 주민 동의를 얻고, 민간 기업과 함께 투자 컨소시엄을 만들어 실제 투자 약속을 가져와야 한다. 정부는 이를 공정하고 전문적으로 심사할 체계를 준비하고 있다. 입지는 항만과 공항 접근성이 좋고, 대학과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비수도권 대도시가 유리하다. 메가특구는 모든 소멸 위기 지역을 살리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실행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도구다.


기존 샌드박스의 최대 단점은 '존속 불확실성'이다. 특히 금융 분야가 그렇다. 다른 분야는 임시 허가를 준 뒤 제도로 굳힌 사례가 있지만, 금융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정부는 '메가 특구'라는 이름으로 지역에 장기적이고 상시적인 특례를 줄 수 있는 법제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규제 방식을 네거티브로 바꾸는 게 맞지만, 한국은 성문법 국가라 행정부의 재량을 법으로 명확히 보장해줘야 한다. 이런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정부의 즉시 개입권 같은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정부가 투명하게 운영해야 국회도 권한을 더 줄 수 있다.


지금 정부가 하고 싶은 건 기존 지역에 메가시티를 적용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희망과 실재 여건이 맞지 않으므로, 절충안을 넣는다면 큐빅을 돌리듯 수많은 검토가 필요하다. 도요타의 우븐시티처럼 노후 산업단지 옆에 백만 평을 붙여 '코리안 시티'를 만들자는 방안도 있다. 규제 이슈도 없다. 희망자만 살면 된다. 반면 기존 도시 활성화는 정책 사안이니 법적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많이 필요하다. 메가특구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정치적으로 나눠먹기식으로 지역을 정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지역 특성 반영'이라는 공급자 중심 논리를 경계해야 한다. 지자체가 말하는 특성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기업이 인정하고 선택하는 특성만 진짜 의미가 있다.



-우리도 우븐시티 같은 모델을 할 수 없나.

△정: 신축 도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현실적 대안은 기존 도시를 사들여 재입주권을 주고 희망자만 입주시키는 방식이다.


△박: 한국은 지방 소멸이 빨라서 새로 밀어낼 만큼 큰 도시는 많지 않다. 대신 인구가 빠져나가 외곽에 빈 공간이 생긴 중대형 도시를 활용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대구·칠곡처럼 기존 인프라를 살려 재활용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정: 지방이 스스로 후보지를 찾아오는 게 바람직하다. 경북 의성은 인구소멸 1순위 지역이지만, 안티 드론 테스트 기지를 만들면서 전파 교란 영향을 받는 300가구를 군수가 직접 이전시켰다. 보상과 주민 수용성을 전제로 신기술 실험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전통 산업은 규제 위험이 작지만, 신산업은 부작용이 불확실해 훨씬 어렵다. 그래도 결국 그 길을 가야 한다.


△박: 재원을 정부가 모두 부담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도요타가 우븐시티에 14조원을 투자한 건 전략적 가치와 수익이 보였기 때문이다. 국부펀드도 투자자로서 이익이 생기도록 설계해야 한다. 정부 예산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업은 한국의 산업단지 A·B·C 중에서 고르지 않는다. 미국 텍사스와 한국을 놓고 비교한다. 결국 핵심은 글로벌 경쟁력이다. 투자자에게 충분한 수익을 보장하면 해외 자본도 따라온다. 정부는 돈을 다 대는 주체가 아니라, 민간 투자를 이끌어내는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이 정부에 바라는 그림은 무엇인가.

△손보미 스타씨드 대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창업자들의 꿈은 전 세계 시장에서 사회적·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13년 동안 창업하면서 정부나 정치 시스템을 잘 몰라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정부와 국회는 늘 '왜 안 되는가'부터 말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해외 시장을 목표로 '어떻게 하면 되게 할까'를 고민한다. 메가샌드박스가 이 두 언어를 이어주고, 실제 실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제도가 되길 바란다.


사회=최일권 산업IT부장

정리=박소연·우수연 기자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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