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메가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광범위한 규제 완화 실험에 나서기 전에, 먼저 기존 지역 중심 규제 특례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냉정히 짚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정 지역 단위로 쪼개진 규제 특구가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를 복기하고, 새로운 메가샌드박스 제도는 산업 간 연계성과 실행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 규제 특례 제도는 2000년대 초반부터 단계적으로 진화해왔다. 2004년 지역경제 활성화와 산업 육성을 목표로 '지역특화발전특구'가 도입됐고, 2018년에는 신산업·신기술의 실증을 지원하기 위한 '규제샌드박스', 2019년에는 산업혁신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겨냥한 '규제자유특구'가 출범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지역 단위를 넘어 국가 차원의 통합 실증 플랫폼인 '메가샌드박스'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제도들이 남긴 시행착오를 분석하는 일은 새로운 규제 완화 실험의 성패를 가르는 출발점이다.
우선 1세대 특례제도인 '지역특화발전특구'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는 전북 익산 한방의료특구다. 이곳은 지역특구로 2005년 지정돼 8년 뒤인 2013년 지정 해제됐다. 애초 계획은 한의학 연구소와 한방 관련 기업을 집적해 지역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천, 완주, 금산 등 전국에서 '한방도시'를 자처하는 도시들이 늘어나면서 경쟁력이 희미해졌다. 투자 매력이 부각되지 못한 채 기업 유치에 실패했다.
입주 기업이 거의 없자, 특구의 존재 이유도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에는 익산시가 '익산종합의료과학산업단지'라는 또 다른 의료 클러스터 계획을 내놓으면서 사업이 중복됐다. 결과적으로 한방특구는 행정구호만 남긴 채 조용히 사라졌다. 지역의 '정책 쇼케이스'가 실질적 산업 육성으로 이어지지 못한 대표적 사례다.
전북 완주 포도주산업특구는 정책 연속성이 사라지면서 특구 유지에 실패한 케이스다. 이곳은 2005년 지정됐지만, 불과 7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당초 포도 생산단지와 가공공장을 세워 와인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모든 계획이 뒤집혔다. 공장 용도가 임의로 변경되고, 특구 사업계획은 무단 수정됐다. '특구'라는 이름 아래 행정 연속성이 무너졌다. 중앙정부의 규제 완화 취지보다 지방 정치의 이해관계가 먼저였던 것이다.
강원 홍천군의 리더스카운티특구는 3세대가 함께하는 복합 실버타운을 표방하며 지역특구로 지정됐다. 그러나 사업의 전제였던 민간자본 3300억원 유치에 실패하면서 좌초됐다. 생활용수 확보나 도로 접근성 등 기초 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거대한 계획부터 세운 게 문제였다. 사업 주체의 소유 부지는 경매로 넘어가고, 민간사업자는 손을 뗐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와의 괴리도 컸다. 부유층 노인 인구 유입에 대한 주민 반발과 위화감이 컸다. 결국 사업의 거대한 밑그림은 있었지만 재원과 주민 공감대, 실행 주체도 없었다는 평가만을 남기고 2012년 지정 해제됐다.
2019년부터 본격 가동된 '규제자유특구'에서도 실패 사례가 적지 않다. 강원 태백시는 2023년 '산림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청정수소 생산·실증' 특구로 지정됐지만, 사업은 채 1년도 버티지 못했다. 당초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기술 검증을 마치겠다는 계획이었으나, 참여 기업들의 경영난이 겹치면서 실증이 사실상 중단됐다. 핵심 기업이 사업을 지속할 여력이 떨어지자 실증 설비 구축도 지연됐다.
결국 태백시는 특구 지정 6개월 만인 2023년 11월, 조기 해제 수순을 밟았다. 당초 '산림자원 기반 수소 산업'이라는 신산업 모델을 내세웠지만, 지역 내 관련 산업 생태계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규제특구가 반년만에 해제 수순을 밟으면서,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이 강원도의회 본회의에서도 제기됐다. 이한영 강원도의원은 "새로운 사업 공모 과정에서 무조건 선정되고 보자는 매몰적인 행정사고로 사실이 포장되고 현장 여건이 왜곡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사업 중단에 따른 주민들의 피해와 보상을 고민해야 한다"고 질타한 바 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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