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동문 모임에 갔다가 건축업 하는 선배의 하소연을 듣고 깜짝 놀랐다. 7년을 준비한 주상복합 건축사업이 막바지 1700억원 PF 대출을 코앞에 두고 시공사가 책임 준공을 거부하는 바람에 수포가 됐다는 것이다. 시공사 회장은 "노란봉투법 때문에 길어질 공사 기한과 공사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며 PF대출 보증을 거부했다고 한다. 노란봉투법 통과로 건설업계의 원청 기업과 하청 업체 간 분규, 공사 기간 연장, 공사비 증가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 사례를 접하고 보니 더욱 씁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디 건설업계뿐이랴. 자동차, 조선, 철강, 유통 등 우리 산업의 주요 분야에서 그동안 보지 못한 노사분규가 빈발하고, 생산 비용은 증가하는데도 생산성은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노란봉투법에 더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이 개정안도 버거운데 거기서 더 나가 이사회를 더더욱 옥죄는'더 센' 상법 개정안, '더 더 센'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속속 넘어서고 있다.
노동환경 개선과 노동자 삶의 질을 높여달라는 노동계의 외침이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 정책과 산업 정책은 상호 긴장 관계 속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거위를 죽이지 않고 계속 황금알을 낳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거위가 죽어버리면 황금알이 어디 있겠나. 밖에서 상법 개정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를 흔들고, 안에서 노동자들의 쟁의가 계속되면 기업가는 이 땅에서 기업을 계속할 수 있을까.
법률가 입장에서 정말 안타까운 것은 상법과 노란봉투법 개정 과정에서 근대법의 근간 원칙이 완전히 무시된 입법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근대법은 기본적으로 직접 계약을 맺은 사람들 간의 권리 의무를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요즘 국회는 계약 관계가 없는 이들 간에 불특정한 개념을 토대로 의무를 지우거나, 법적 지위를 강제하는 방식의 입법을 휘두른다. 회사의 이사에게 계약 관계가 없는 주주에 대한 권리보호 의무를 부과하거나, 원청과 하청 간의 '실질적 지배'라는 불특정한 개념에 기초해 원청에 노동법적 의무를 부과하는 식이다. 기업하는 사람 입장에선 당장 이 리스크를 어떻게 벗어날지 머리를 싸매고 도망칠 방안을 궁리해 낼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 3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대미 투자 문제를 놓고 최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기업들도 1000억 달러 넘는 투자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필자는 기업들의 투자 약속이 과연 전적으로 미국의 관세 압박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는 보다 기업친화적인 해외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을까.
이 일들이 현실화하면 국내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은 국내로 유입되기보다 해외 재투자로 소비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결국 국내 일자리 감소와 노동자들의 손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의 해외 엑소더스가 가속화하면 벌어질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쇠락과 추락이다.
필자가 만난 어떤 기업인은 미국의 관세 압박에 따른 해외 투자 러시를 "울며 겨자 먹기식 억지 투자가 아니라 기업 입장에선 불감청(不敢請)이나 고소원(固所願)인 측면도 있다"고 했다. 사실 바라던 바라는 것이다. 그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요즘이다.
이동열 로백스 대표변호사(전 서울서부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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