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던 피부에 새 숨을…화상 환자 회복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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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던 피부에 새 숨을…화상 환자 회복 돕는다
한강성심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 개소 후 2년여 만에 1만 회 돌파 2기압 환경서 혈중 산소 농도↑ 조직 회복·염증 완화 등 효과 3호기 도입으로 36명 동시 치료
“고압산소치료는 압력을 가한 상태에서 마스크로 100% 산소를 흡입해 혈중 산소를 높이는 치료입니다. 국내에서는 1.4기압 이상을 고압으로 보지만, 실제 치료 효과는 2.0~3.0기압에서 기대할 수 있습니다. 기압 높아집니다. 코 막고, 숨을 참아보세요.”

# 영화 속 전투기 내부를 떠올리게 만드는 치료실, 바로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고압산소치료 센터다. 마주보고 앉는 좌석에 자리마다 산소호흡기가 설치돼 있다. 치료가 시작되면 내부 공기가 빠지면서 실내 기압이 수심 10m(약 2기압)에 가깝게 오른다. 치료가 시작되면 비행기를 탔을 때처럼 귀가 아프거나 머리가 띵한 반응이 동반되는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증상이 지나면 고농축 산소가 말초혈관까지 스며들면서 치료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환자들이 치료 후에는 개운한 표정으로 센터를 나선다.
한림대한강성심병원 고압산소치료센터의 다인용 챔버 내부 모습. 국내 최대 규모인 이 챔버는 최대 36명의 환자를 동시에 치료할 수 있다.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제공 한림대학교 한강성심병원이 최근 고압산소치료 시행 건수 1만회를 돌파했다고 23일 밝혔다. 2023년 7월 고압산소치료 챔버 1·2호기를 도입하며 고압산소치료센터 개소 이후 불과 2년여 만에 거둔 성과다. 치료 건수는 2023년 2189건, 2024년 4612건, 2025년 9월까지 3227건으로, 누적 1만례를 넘어섰다. 점점 더 커지는 수요에 최근 대형 챔버 3호기를 새로 도입했다.

고압산소치료 1만례 달성 기간 고압산소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질환 비율을 분석한 결과, 화상 및 재건 수술 환자가 99.5%를 차지했다. 이곳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국내 유일의 화상전문 대학병원이다. 매년 2700건 이상의 화상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중증 화상환자 회복 속도 높이는 치트키, ‘고압산소치료’

화상 치료는 수술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시 예전의 조직으로 개선되기까지 꾸준한 관리와 치료한다. 이런 상황에 병원은 화상 조직 회복과 혈류 개선에 도움이 되는 고압산소치료를 운영하게 됐다.

고압산소치료 자체가 생소할 수도 있다. 이는 2~4기압의 고압 환경에서 100% 산소를 흡입해 혈장 내 산소 용해도를 높여 손상된 조직까지 충분한 산소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혈관 신생과 조직 재생이 촉진되고, 염증·부종 완화 및 감염 억제 효과가 나타난다.

고압산소치료센터는 2년간의 운영을 통해 고압산소치료가 ▲화상 및 창상질환에서 치유 속도 향상 ▲피부이식 생착률 상승 ▲감염과 부종 억제 ▲치료 후 흉터·통증 등 후유증 감소와 같은 치료 효과를 확인했다.

병원 분석에 따르면 1만례 기간 동안 고압산소치료를 받은 환자 중 99.5%가 화상 및 재건 수술 환자였다. 더 구체적으로는 ▲화상치료 및 피부이식술(60%) ▲재건 목적의 피부이식 및 피판술(39.5%) ▲난치성 골수염(0.4%) ▲방사선 치료 후 조직괴사(0.1%) 순이었다. 건강보험이 인정한 적응증을 중심으로 난치성 상처·일산화탄소 중독·당뇨발(당뇨족) 등에 우선 적용한다.

허준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장은 “중증 화상환자의 회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처치유 촉진’과 ‘감염 예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압산소치료 시행 후 2년 넘게 시스템 안정화에 집중했다”며 “2시간 이상, 2기압 수준의 표준 치료법을 고수해 효과와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했다”고 소개했다.

고압산소치료 효과가 입소문을 타면서 치료를 원하는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도입한 3호기를 통해 총 11명이 한번에 치료할 수 있다. 산소챔버도 3개가 된 만큼 36명이 동시에 고압산소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미국·유럽의 상급 병원에서도 30인 이상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대형 챔버를 운영하는 곳은 많지 않다.

병원 측은 그동안 입원환자 중심으로 운영하던 체계를 외래 환자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외래는 1시간~1시간30분 세션으로 조정해 부담을 줄이고 입원은 기존처럼 2시간 연속 치료를 유지한다.

◆국내 최대 규모 확장… 외래·응급 대응 체계 강화

오다나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간호사(화상코디네이터)와 함께 확장된 산소치료실을 둘러봤다. 3호기는 실시간 환자 모니터링, 온도·공기질 자동제어, 에어 브레이크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적용해 장시간 치료 시 안정성과 편의성을 높였다. 또 치료실 내부 구조를 병상 공간과 의료진 전용 도킹 챔버로 분리하는 커스터마이즈 설계를 적용해 응급 진입·감압·출입 동선을 안전하게 분리했다.

병원이 고압산소치료 시 가장 생각하는 것은 환자 안전이다. 이를 위해 치료 적합 여부를 철저히 선별한다. 오다나 간호사는 “스크리닝을 통해 고압산소치료가 필요한 사람을 선별한 뒤 상담과 사전교육, 압력평형테스트를 거쳐 통과한 환자만 본 치료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고압산소치료 과정에서 기압 상승 시 생기는 귀의 통증을 막기 위한 교육도 치료에 앞서 시행한다. 치료실 내 기압이 상승하면 외이 압력은 높아지지만 고막으로 막혀 있는 중이의 압력은 변하지 않아 귀가 먹먹해질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부비동과 유스타키오관의 압력을 맞추는 ‘압력평형(이퀄라이징)’ 교육을 20~30분간 무료로 제공한다. 무엇보다 기흉 여부 확인을 위한 흉부 엑스레이와 심전도 검사도 필수로 진행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관리한다.

오 간호사는 “상대적 금기로 분류되는 상태라도 환자 요청이 높을 때는 충분한 설명과 집중 모니터링 하에 시범 적용 후 중단·전환을 결정한다”며 “절대 금기는 치료되지 않은 기흉”이라고 강조했다.

◆치료 전 ‘귀 압력평형 교육’으로 부작용 최소화

한림대한강성심병원은 고압산소치료의 질 향상과 표준화를 위해 연구와 교육에도 힘을 쏟는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정기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축적된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압산소치료 표준화 가이드라인 연구를 진행 중이다.

허준 병원장은 “이번 1만례 달성은 단순히 숫자를 넘어, 화상과 난치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며 “3호기 도입으로 완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인프라를 통해 환자 중심의 가치를 실현하고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의료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림대한강성심병원은 보건복지부 지정 국내 유일의 화상전문 대학병원으로 매년 2700건 이상의 화상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외래환자 12만2000명, 입원환자 17만7000명을 진료했으며 한림화상재단을 통해 국내외 저소득층 화상환자에게 의료비와 재활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Q&A. 고압산소치료는

Q. 고압산소치료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A. 치료는 대체로 1.8~2.5기압 범위에서 시행하며 환자 불편을 고려하되 2.0기압을 기본으로 유지한다. 연속 90분 이상 산소 흡입이 효과적이라는 근거에 따라 단일 스케줄 2시간을 기본으로 한다. 1.3~1.5기압 수준의 저압 치료는 효과가 미약하다. 신생혈관 생성 촉진 등 기전은 최소 연속 12회 이상 치료에서 뚜렷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병원은 연속성·일정 강도의 프로토콜을 관리 지표로 삼고 있다. 무엇보다 모든 환자에게 압력 적응 테스트(1.5기압·30분 무료)를 실시하고 X-레이·심전도 검사를 통해 부작용을 사전 차단한다.
Q. 화상뿐 아니라 다른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나.
A. 당뇨발에도 적용 가능하다. 당뇨로 인해 말초혈관이 손상되면 괴사가 진행되는데 고압산소치료를 적절한 시기에 잘 활용하면 발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건강한 일반인이 건강관리 개념으로도 종종 찾으시는 것 같다. 이럴 경우 부종이 급격히 빠지는 모습이 보인다.
Q. 치료 성과는 어떤가.
A. “임상 관찰상 상처 치유 기간이 빨라져 통원 치료 단축에 기여한다. 화상 환자의 치료기간이 단축될수록 사망률·후유 흉터·관절 구축 위험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현재 장기 임상 연구로 통계적 근거를 축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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