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3주기] 3년 만에 첫 정부 추모식… "그날 국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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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3주기] 3년 만에 첫 정부 추모식… "그날 국가는 없었다"
3주기 기억식 참석한 이태원 참사 외국인 유가족들 서울연합뉴스 3주기 기억식 참석한 이태원 참사 외국인 유가족들 (서울=연합뉴스)29일 오전 10시 29분. 시계의 분침이 이태원 참사를 상징하는 숫자를 가리키자 서울 전역에 추모 사이렌이 울렸다. 그렇게 이태원 참사 3년 만에 비로소 정부 차원의 첫 공식 추모 행사가 시작됐다.

이날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는 이태원 참사 3주기 추모 기억식인 ‘별들과 함께, 진실과 정의로’가 열렸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서울시, 행정안전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기억식에는 주최 측 추산 850여 명이 참석했다. 정부 공식 초청으로 방한 중인 외국인 유가족 46명을 포함해 국내외 유가족 300여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묵념이 끝난 뒤 이재명 대통령의 추모사 영상이 상영됐다. APEC 행사로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한 이 대통령은 영상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그날 국가는 없었다”며 “지켜야 했던 생명을 지키지 못했고, 막을 수 있었던 희생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든 발언을 마친 뒤 이 대통령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유가족들은 “치유는 진상 규명부터 시작된다”고 입을 모았다. 송혜진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지난 3년간 이태원 참사 유족은 국가로부터 외면당했다”며 “오늘부터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형식이 아닌 진심으로,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실천으로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송 운영위원장의 발언이 끝나자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국회와 거리에서 투쟁하며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통과시킨 장면이 담겼다. 영상이 재생되자 일부 유가족은 챙겨온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거나 휴대전화로 영상을 촬영했다.

이후 연단에 오른 우원식 국회의장은 유가족들이 염원해온 생명안전기본법의 통과와 희생자 2차 가해 방지를 약속했다. 우 의장은 지난해 6월 출범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언급하며 “늦은 만큼 빈틈없는 진상조사에 힘쓰겠다”고 말한 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가장 큰 책무라는 국민적 합의를 반드시 입법으로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송기춘 특조위 위원장 역시 철저한 진상규명 의지를 밝혔다. 송 위원장은 “진상조사와 피해 구제를 위해 유족께 연락을 드리면 ‘이제 와서 뭐하느냐’고 말씀하시기도 한다”며 “그러나 치유의 시작은 진상규명”이라고 강조했다.

출범 약 9개월 만인 지난 6월 활동을 시작한 특조위는 현재 △희생자 신청 사건 92건 △피해자 신청 22건 △피해자 직권 123건 △진상규명을 위한 직권 과제 6건 △안전사회를 위한 직권 과제 8건 등 총 251건의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리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어서 문화예술인들이 연이어 무대에 올랐다. 시인 박소란의 ‘가을밤 산책’ 낭독을 시작으로 가수 안예은의 추모 공연, 배우 문소리의 추모글 낭독 등이 이어졌다.

시 낭독이 시작되자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입술을 다문 채 하늘을 응시하던 유가족들도 낭독이 끝난 뒤 안예은 씨의 노래가 시작되자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외국인 유가족 일부는 허리를 숙인 채 오열했고, 서로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과거 함께 일했던 동료를 이태원 참사로 잃은 배우 문소리 씨도 무대에 올라 추모글을 낭독했다. 문 씨는 이창동 감독 영화 에 등장하는 시 ‘아녜스의 노래’를 낭독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억식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고(故) 최보성 씨의 어머니 김숙희 씨는 “내일이 아들 생일”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김 씨는 “유족이 바라는 건 이런 적극적인 진상규명”이라며 “어떤 방향으로 수사하겠다, 지금은 어떤 단계에 있다는 걸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며칠 전 보성이 누나가 꿈을 꿨는데 ‘보성이가 나와서 웃고 있었다’고 말했다”며 “보성이가 웃은 것처럼 그날의 아픔을 잊기 위해 꼭 진상규명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아주경제=하주언 수습기자 zoo@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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