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 남짓한 방에 여공 4∼5명이 함께 잤어요. 주·야간 근무자가 번갈아 쓰다 보니 열 명 넘는 사람이 한 공간을 나눴죠.”
서울 금천구 ‘순이의 집’에는 1970∼80년대 구로공단 여공들의 삶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가발과 봉제공장에서 하루 12∼15시간씩 일하며 ‘산업역군’으로 불렸던 이들의 삶은 고단했다. 세월이 흘러,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서린 이 자리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G밸리)로 거듭났다. 금천구는 이 G밸리를 D·N·A(Data·Network·AI) 산업의 거점으로 키워 첨단산업 중심지로 도약할 계획이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이 G밸리 조감도를 설명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 제공 ◆첨단산업 단지로 재편 G밸리 1964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산업단지로 조성된 구로공단은 2000년 ‘G밸리’로 명칭을 변경하며 첨단산업 단지로 재편됐다. 29일 금천구에 따르면 G밸리는 192만㎡(약 58만평) 규모로 1단지(구로디지털단지)는 구로구, 2·3단지(가산디지털단지)는 금천구에 속해 있다. 이 중 77%를 차지하는 2·3단지에는 기업 1만3822개와 지식산업센터 119개가 입주해 있으며 14만8339명(2024년 12월 기준)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연간 생산액은 14조원, 수출액은 33억달러(약 4조7000억원)에 달한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지난 23일 프레스투어를 진행하며 “G밸리에는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 기업 2754개가 입주해 있으며, 이는 서울의 71%, 전국의 35% 수준”이라며 “명실상부한 서울의 첨단산업 중심지로 미래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G밸리 내 기업들은 기술 경쟁력도 두드러진다. 사운드 솔루션 기업 제이디(JD)솔루션은 음향을 공간 특성에 맞게 제어하는 기술로 지난 9월 독일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베스트 오디오 혁신상’을 수상했다. 또 ㈜아프스(AFS)와 ㈜오티톤메디컬 등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박람회인 소비자가전쇼(CES)에서 잇달아 혁신상을 받았다.
금천구는 G밸리 내 AI 혁신센터를 조성하고,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 입주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유 구청장은 “적극적인 행정적 지원으로 기존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돕고 신규 기업 유입을 확대해 서울 경제거점 4대 도시로 발돋움하겠다”고 강조했다.
◆여공의 땀과 기억 담은 ‘순이의 집’ 첨단산업의 중심으로 성장한 G밸리의 뿌리에는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1970∼80년대 구로공단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지만 쪽방촌에서 힘겨운 생계를 이어갔다.
이들의 삶을 기록한 공간이 노동자생활체험관 금천 순이의 집이다. 금천구가 2013년 개관한 이곳은 당시 여공들의 주거 형태였던 벌집 구조의 쪽방을 그대로 재현했다. 패션방, 공부방, 미싱방 등 6개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공용 부엌이 복도 한편에 자리한다. 최근에는 증강현실(AR) 기술을 도입해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일상과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매년 1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으며, 지난 10월에는 YH무역 노조 지부장 출신인 최순영씨가 명예관장으로 위촉됐다.
유 구청장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했다”며 “금천 G밸리의 과거를 기억하며 D.N.A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세희 기자 saehee012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