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얼마 전만 해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저평가된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을 설명하는 가장 흔한 수식어였다. 외교 관계에 있어서는 한국을 배제한 채 북핵 등 중요한 국제 정세 논의가 있을 때마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산업계는 한국의 경쟁력이 일본과 중국에 낀 형국이라는 뜻에서 샌드위치에 비유되기도 했다.
최근 한국 사회 전반에 재평가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한때 '저평가된 나라'로 불리던 대한민국이 이제 전환의 국면을 맞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로 2400선까지 떨어졌던 코스피는 이제 사상 첫 4000선에 올라탄 데 이어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건 5000선 안착도 넘볼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외교 무대에서도 이번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의 존재감이 뚜렷해졌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늘 줄타기 외교의 상징으로 불리던 한국이 한·미·중 3자 연쇄 회담을 통해 세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질서의 이정표를 만드는 데 가교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140여년 동안 한국 외교가 늘 '큰 나라들 사이의 균형'을 숙명처럼 짊어졌던 역사를 떠올리면, 이번 APEC 무대에서의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분명 재평가의 시간이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가 지속가능한 변화의 시작이 될지, 아니면 일시적 착시가 될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코스피 4000은 줄곧 박스권 안에서만 움직인 우리 증시에 상징적인 숫자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데 필요한 주주환원 강화,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계 체질 개선 등이 뒷받침된 결과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등 미래산업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우리 산업 생태계 전반의 생산성·노동 효율·제도 혁신은 제자리걸음이다.
이벤트를 통해 부각된 외교적 존재감이 지속될 수 있도록 국력도 키워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랫동안 끌어온 무역협상이 타결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가지기보다는 손실폭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응해야 하는 입장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산업 경쟁력과 혁신역량이 탄탄해야 외교의 전략적 균형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깨달았다. 기술·경제·군사력, 그리고 사회의 결속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교적 위상은 금세 흔들린다. 이 대통령도 지난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통상·안보 협상을 타결한 이후 참모들에게 "국력을 키워야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과거의 성장 모델이 압축적 산업화였다면, 앞으로는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 한편,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다자간 협력 확대를 통해 국익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 지속가능 한 혁신사회로의 전환도 필요하다. 재평가란 외부의 인식 변화가 아니라 내부 구조의 혁신이 뒷받침될 때만 지속될 수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지금이야말로 재평가의 시간을 재구성의 시대로 전환할 기회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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