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맥]APEC 의미 되살린 기업인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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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맥]APEC 의미 되살린 기업인 행사

지난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APEC) 정상회의가 '경주 선언' 채택과 중국의 내년도 의장국 인수로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경주를 APEC 정상회의 개최지로 결정하고 수십 차례 회의와 예행연습을 거쳐 지방도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국제행사를 개최해 21개 회원국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APEC 정상회의의 공식 주제인 "지속가능한 내일: 연결, 혁신, 번영"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유무역 및 다자주의 재확인,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AI) 협력, 인구구조 변화 대응, 아시아·태평양 지역 문화산업 협력, 포용적·지속 가능 성장 등 많은 내용이 정상선언문에 포함됐다.


APEC 자체가 자발적이고 비구속적 협의체이므로 정상회의 선언의 이행을 담보할 장치는 없다.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상선언문의 단어 하나에도 논란이 적지 않다. 자유무역 촉구에 대해서는 미국과 중국이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선 러시아가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따라서 정상회의 선언문에는 AI 협력, 인구 구조 변화 대응, 포용적 성장 등 회원국이 공감하는 주제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각 회원국의 실무진들은 몇 달째 문안 협의에 매달리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정상회의 막바지에 가까스로 합의안을 도출하게 된다.


미·중 정상회의와 한미 관세 협상 등이 APEC 정상회의보다 더 큰 주목을 받았다. 국제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재집권 이후 처음으로 만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전 세계가 관심을 가졌다. 국내에선 한미 정상회의에서 관세 협상 타결 여부에 시선이 집중됐다. 미·중 정상은 임시 휴전을 합의했고 앞으로 보완작업이 필요하겠지만 한미는 관세 협상 타결을 발표했다.


아쉽게도 지난 십여년 동안 APEC 정상회의는 그다지 국제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고사(枯死)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APEC이 '이야기만 하는 장소(Talk Shop)'가 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APEC 정상회의는 실질적 행동이나 강제력 없이 형식적이고 요식적인 토론에 그친다는 지적이 많았다.


다자간 정상회의 흥행의 최대 요소는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 여부였다. 일본 방문 후 정상회의 개최 이틀 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몇 건의 정상회의를 갖곤 APEC 개막일 전에 귀국해 버려 김이 빠졌다. APEC 정상회의에선 시진핑 주석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이기주의가 세계 통상환경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이번 APEC 회의를 살린 것은 글로벌 기업인들의 활동이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APEC 최고경영자 서밋(CEO Summit)에 1000명이 넘는 국내외 기업인이 참석했고 모자라는 현지 숙박 해결을 위해 대형 크루즈선 2척을 포항 영일만에 띄우기도 했다.


APEC 정상회의의 부대행사로 개최된 최고경영자 서밋의 핵심 주제는 3B로, 현실과 이상을 연결(Bridge)하며 혁신 성장의 비즈니스(Business)로 더 나은(Beyond) 미래 번영을 추구하자는 의미다. 총 21개 세션으로 구성됐으며 AI, 탄소중립, 수소경제, 금융, 첨단기술, 지속가능성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민간기업 CEO, 정상급 인사, 정책 리더들이 참석하여 실천 방안을 논의했다. 참여 기업인 중 가장 이목이 쏠린 인사는 AI 시대를 여는데 필수적인 고성능 그래픽카드(GPU)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였다.


이번 경주 회의는 내년에 중국이 개최할 선전 APEC 정상회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과 대치하고 있는 중국은 '중국 특색'을 강조하기보다는 '진정한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확산시키는 계기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또 경주 APEC 회의를 참고해 기업인 행사를 보다 더 내실 있게 운영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전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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