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집단 구금 사태가 단순한 인권 이슈로만 다뤄져서는 안 된다. 최근 귀국한 60여명의 한국인들이 대부분 온라인 불법 사기 조직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 사태의 본질은 '피해자 구조'가 아니게 됐다. 캄보디아 경찰이 이들을 구금한 이유도 단순한 불법체류가 아니라 국제 온라인 사기와 인신매매 혐의였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간 우리 사회는 해외에서 구금된 자국민에 대해 '피해자' 프레임을 적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상당수는 이미 위험을 인지하고도 금전적 이익을 기대하며 범죄조직의 손을 잡은 경우가 많다. 일부는 자발적으로 조직의 일원이 되었고, 피해자로 포장된 채 귀국했을 뿐이다. 스스로 위험한 선택을 한 이들을 무조건 '불쌍한 청년'으로 묘사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일이다.
물론 이들이 전적으로 가해자라는 단정도 위험하다. 범죄조직은 늘 취약한 청년층을 노린다. 코로나19 이후 장기 구직난, 저임금 노동 환경, '한탕주의'가 결합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 달에 1000만원 벌 수 있다"는 제안은 달콤한 유혹이다. 그러나 그 순간,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흐릿하게 넘나들며 스스로를 '도구'로 전락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이번 사태는 청년층이 경제적 절박함 속에서 얼마나 쉽게 범죄 구조의 말단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문제의 근원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무감각이다. 한국 사회는 '쉬운 돈'을 좇는 풍조에 대해 경계심을 잃은 지 오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는 '디지털 부의 환상', 가상화폐로 대표되는 투자 광풍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청년들은 자신이 불법 사기 조직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보다는 '무책임한 공범자'에 더 가깝다는 인식이 필요한 이유다.
이 사태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첫째, 정부 차원의 해외 취업·파견 검증 시스템 재정비가 필요하다. 정부가 운영하는 해외취업 지원 플랫폼 '월드잡플러스'는 제대로 된 홍보조차 없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 해외 구직이 민간 플랫폼과 개인 SNS를 통해 이뤄지면서 취업 희망자들은 사실상 아무런 검증 없이 현지로 향하고, 범죄조직은 그 틈을 이용한다. 해외취업 공식 플랫폼이 있으면서도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 공공의 책임은 형식만 남고 기능은 사라졌다.
둘째, 외교적 대응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캄보디아 등 동남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온라인 범죄는 이미 국제적 수준으로 조직화돼 있다. 단순 영사 조력이나 귀국 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현지 수사기관과 상시 협조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한국 경찰의 파견근무나 공조 수사 채널을 정례화할 필요도 있다.
셋째, 귀국한 이들에 대한 사후 관리가 필수적이다. 이번 사태로 귀국한 인원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단순 송환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범죄 가담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고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동시에 실제 피해자 신분으로 속아 넘어간 이들에 대해서는 사회복귀 프로그램을 제공해 재유입을 방지해야 한다.
돈을 좇는 인간의 본능이 범죄의 구조와 결합할 때, 국경은 더 이상 방어선이 되지 못한다. 이번 사태는 한국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도덕적 해이까지 맞물린 복합 위기다. 피해자 서사로는 해결할 수 없다. 진짜 구조는 냉정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캄보디아 사태를 통해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타인의 범죄가 아니라 우리 안의 무책임이다.
유병돈 사회부 사건팀장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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