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우먼톡]대사직은 논공행상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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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우먼톡]대사직은 논공행상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의 외교 지형이 복잡해지고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고, 신흥안보·기후·기술동맹이 얽히며, 외교 현장은 고차원 방정식인 국익 수호의 전쟁터이다.

대사는 단순한 '국가대표'가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현장에서 설계하고 방어하는 야전사령관이다. 그런데도 현재 우리나라의 대사직 수십 곳이 현 정부 출범 이래 공석이다. 외교 최전선이 비어 있다는 것은 곧 국익의 공백을 의미한다. 실제로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근로자 수백 명이 체포된 사건, 캄보디아에서 온라인 범죄 연루 및 구금·사망 사건은, 외교 현장의 사전 사후대응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대사가 부재하거나 역할을 제대로 못 하면,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권익을 지킬 콘트롤타워가 사라진다.


특히 이번 APEC 정상회의 계기로 도출된 협력 약속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이를 구체화할 전문성과 판단력을 갖춘 대사들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사는 외교 행사나 주관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외교의 실행자이자 조정자, 그리고 위기관리의 사령관이다.


그런데 80여개 공석 공관장 자리를 두고 정치권과 학계 인사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대사는 폼만 잡으면 되는 자리"로 한참을 잘못 알고 있다. 외교 현장은 국가 간 이해가 충돌하는 격전지이며, 대사는 그 한복판에 선 사람이다. 주재국과 글로벌 정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외교적 언어를 구사하면서 현지 정부, 기업, 언론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대사의 무지나 잘못된 행동이 수년간 쌓은 국익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과거 정부에서 정치적으로 임명한 대사 중 외교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는 평판을 받은 대사가 한둘이 아니다. 대사는 명예직이 아니라 피를 말리는 극한직업이다.


물론 미국에서는 약 30%의 대사직을 정치적으로 임명하는 관례가 있으나 그 배경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미국 대통령의 국제적 영향력은 막강하여, 대통령의 측근이자 정치적 신임을 받은 인물이 대사로 부임하면, 그 자체로 상대국은 백악관과 직접 통하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대신 현장 외교 지휘는 베테랑 직업 외교관인 부대사에게 맡겨 전문성을 보완하는 시스템으로 운용한다.


한국의 외교 현실은 다르다. 우리 대통령 개인이 미국 대통령처럼 국제정치의 중심에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치적 인연으로 대사를 보내는 것은 외교 리스크를 키우는 일이다. 미국을 제외한 중국, 러시아, 일본, 영국 등 모든 강대국뿐 아니라 북유럽, 브라질 같은 거의 모든 외교 강국들이 정치적 임명을 하지 않는 이유이다. 과거 정치적으로 임명된 대사 중 이홍구 전 총리나 한승수 전 총리같이 대사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분들이 몇분 있다. 이 분들은 외교적 역량과 전문성이 이미 갖추어진 분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외교는 결국 신뢰와 전문성의 게임이다. 외교관 출신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목표와 전략에 기반하여 현장에 맞는 전략을 짜고 어젠다를 설정하고 조직을 관리하면서 위기를 조율할 능력이 있느냐가 본질이다. 최근 비전문가 주유엔대사 임명이 걱정스러운 이유다. 대사는 폼을 잡는 자리가 아니라, 매일 위기와 협상의 최전선에 서는 야전사령관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려고 한다면, 결국 그 부담은 나라 전체가 떠안게 된다. 외교의 공백을 메우는 길은 외교 전문성과 사명감을 갖춘 대사 임명에서 시작된다.

박은하 전 주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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