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버스 운전기사를 구하기가 너무 어렵네요." 최근 법제처와 서울시의 한 구의회가 개최한 현장 간담회에서 지역 버스회사 대표가 한 말이다. 마을버스 운전기사를 구하기 어려워 배차간격이 길어지고 주민들이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역시 길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현재 규정상 버스 운전기사가 되려면 1종 대형면허 취득 후 1년 이상 경과해야 한다. 예외적으로 일정한 교육을 이수하면 가능하지만 교육의 운영 횟수와 모집 인원이 제한적이어서 자격 취득을 희망하는 이들이 필요한 시기에 교육을 이수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작은 규정 하나가 주민의 일상을 지연시키고 있던 것이다.
현장의 법과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사회가 변하는 속도는 빠르지만 법과 제도가 변화하는 속도는 그보다 느리다. 지방정부가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중앙정부에 법령 개정을 요청하더라도 협의가 쉽지 않다. 현장의 문제를 직접 제도로 연결하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이제는 중앙정부 중심의 법령 정비를 넘어, 지방정부가 직접 참여해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에 반영하는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 법제처가 추진 중인 '지방정부 맞춤형 법령정비 제안 제도'는 바로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위한 시도다.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한 지방정부의 개선 요구가 법령 정비 절차를 거쳐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다시 말해, '법을 현장 속으로, 현장을 법제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현장과 법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일은 결국 지역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 인구 감소와 산업 구조의 변화,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실현 등 오늘날 지역이 맞닥뜨린 과제들은 이제 한 지역의 역량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문제가 파급되는 범위가 광역적이고, 한 지역의 결정이 인접 지역의 생활권과 산업에 직접적인 외부 효과를 미치기 때문이다. 이제는 행정 경계를 넘어 다른 지역과 협력하고 자원을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지역 간 균형 성장을 이루기 위해 '5극3특'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한 행정 구역 조정이 아니라 지역이 긴밀하게 연결되고, 주도적으로 협력하며 성장하는 초광역 지방자치 체계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지역의 실정을 반영한 법령 체계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지역 간 균형발전도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만다.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가 법과 제도에 담길 수 있도록 제도적 연결고리를 강화해야 한다.
오는 12월에 열리는 '지방자치입법 국제포럼'은 이러한 논의의 장이다. 독일, 프랑스 등 초광역 행정체제에서 지방 분권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킨 국가의 전문가들과 국내 학계 및 정책 현장의 관계자들이 모여 각국의 경험과 국내 현실을 함께 비춰보고, 초광역 행정체제에서 지역의 현실이 입법으로 어떻게 반영돼 왔는지,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자치입법권이 그 동력을 어떻게 만들어갈지를 모색한다. 이번 포럼을 통해 중앙정부는 초광역 행정체제를 위한 법제적 보완 방안을 찾고, 지방정부는 법제 역량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마을버스 운전기사를 구하기 어려운 서울 지역의 사례에서처럼, 생활 속 불편과 제도 간의 차이를 줄이는 일은 결국 현장에서 출발해야 한다. 법제처는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제도로 이어가는 징검다리가 되고자 한다. 법이 지역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지역이 법제를 통해서 함께 성장하는 길, 그곳이 바로 '살아있는 지방자치'의 출발점이다.
조원철 법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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