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영혼을 갈아넣은 협상, 장기전 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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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영혼을 갈아넣은 협상, 장기전 준비해야

이재명 정부 5개월간 최대 과제였던 한미 관세 협상이 일단 큰 고비를 넘겼다. 협상팀의 인내와 집요함, 이를 지지해준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요구한 3500억 달러(약 500조원) 대미 투자 패키지 세부 내용을 두고 수십차례 대면·비대면 협상을 이어 온 협상단에게 이 대통령은 '합리적 조건이 아니라면 서둘러 협상을 타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침을 내렸고, 협상단은 '국익'과 '상업적 합리성'을 내세워 치열하게 협상에 임했다. 거시·미시 정책에 통달해 '해결사'로 불렸던 김용범 정책실장조차 "아내 말로는 내가 잠꼬대로 '러트닉!'을 불렀다더라"(3일 아시아경제 인터뷰)라고 했을 정도로 압박감은 심했다.


합의된 내용 곳곳에서 치열했던 협상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양해각서(MOU) 제1조에 '상업적 합리성'을 못 박은 한국은 미국에 연간 200억 달러 한도로 2000억 달러를 현금(equity) 분할 투자하기로 했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탓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외환시장(FX)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마지노선'이다. 투자 대상은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로 제한하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없도록 했다. 투자 원금 회수 전 수익 배분을 5대 5로 하되, 20년 이내에 원리금을 전액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 수익배분 비율 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불확실성이 조금은 걷혔으니, 이젠 후속 조치를 하면서 필요한 요구를 해야 한다. "당분간은 괜찮겠지"하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힘을 앞세워 합의를 번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징후는 계속되고 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경주에서 정상회담 일정을 마친 직후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에 한국이 참여 한다고 주장한 것에,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하이 리스크(고위험) 사업인 가스관 사업은 우리 기준(상업적 합리성)에 들어오기 쉽지 않다"(6일 국회 예결위)고 설명해야 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한 '원자력 잠수함 연료 공급' 의제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JFS)' 문구 협의도 시간을 끌고 있다.



합의문이 나오는 즉시, 자동차와 관련 부품 등 품목별 관세를 25%에서 15%로 신속하게 낮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의약품·목재가 최혜국 대우(MFN)를 받고 있는지, 항공기 부품·복제약·천연자원 등에 무관세가 적용되고 있는지, 반도체는 대만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율을 적용받고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적시에 약속한 관세가 적용되지 않을 경우 대응할 방안도 마련해둬야 한다.


'상업적 합리성'을 따지는 단계에서는 국회를 포함해 '공론(公論)의 장'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러트닉을 위원장으로 하는 '투자위원회'와 김정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협력위원회' 간 협의 내용을 투명하게 국민과 시장에 공개하고 평가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한미 간 시각차가 클 가능성이 커서다.


연간 200억 달러 상한 설정은 최소한의 외환시장 안전장치일 뿐이다. 두고두고 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경고도 적지 않다. 통화 스와프 규모와 기간을 확대하는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동맹 현대화'의 일환으로 안보 패키지에 담은 '핵농축·재처리', '전작권 전환' 등 과제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한미 간 '마일스톤(milestone)'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


관세협상 과정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은 대통령실 참모들은 '헨리 키신저'를 소환하며 약자의 설움을 말했고, 한 외교 리포트는 국제사회가 '가치주의'에서 '거래주의'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영혼을 갈아 넣으며 총력을 다했다는 이 대통령은 여러 번 "국력을 키워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젠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임철영 정치부 차장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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