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25년 단계적 시행·기업 자율성 보장 세대 간 균형·인건비 안정 동시에 달성 韓도 고용·기업 부담 고려한 속도 조절 필요
과연 정년연장에 대한 앞선 선례나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정년연장은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과제로 이미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제도 적용의 속도와 설계 방식에 따라 고용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착륙 방안 마련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준비 없이 제도만 앞당겨 시행할 경우 세대 간 고용 균형과 기업 부담 등 조정 비용이 한꺼번에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먼저 해외에서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이 같은 충돌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제도 변경을 장기간 단계적으로 시행해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1일 국회입법조사처와 대한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일본은 65세까지 고용 의무화를 골자로 한 고령자 계속 고용 제도를 2000년부터 올해까지 25년간 3단계에 걸쳐 정착시켰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은 1994년 정년 60세 의무화를 도입한 뒤 약 12년에 걸쳐 고령화 시대에 걸맞게 정년연장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이어 2013년부터는 ‘정년연장’ 대신 기업이 ▲정년연장 ▲정년 폐지 ▲재고용 중 선택하는 ‘계속 고용 조치’를 의무화해 적용 속도와 방식에 자율성을 부여했다.
고용 유지에 따른 비용 문제도 사전에 조정했다. 일본 기업들은 55세 전후 임금 조정과 직무 재배치를 병행해 인건비 총액 증가를 억제했고, 숙련 인력을 유지하면서도 청년층 채용 여력을 확보하는 구조를 마련했다. 일본이 제도 정착까지 20년 이상 협의·조정을 거친 이유는 정년연장 자체보다 ‘노동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는 설계’에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 조건 및 임금에 대한 규제도 하지 않아서 기업이 임금 수준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정년연장 논의가 연내 입법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속도 조절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고령층의 경제활동 연장은 불가피하다는 데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제도 변경이 노동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조율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일자리 수급 여건 자체가 일본과 다르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2023년 일본의 구직자 1명당 신규 구인 수는 2.28개였지만 같은 기간 한국은 0.58개에 그쳤다. 노동시장 여유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정년을 일률적으로 늘릴 경우 청년층 신규 채용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 부담 역시 논의 대상이다. 현행 호봉제 중심 임금체계에서는 근속이 길어질수록 인건비가 상승한다. 재계는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경우 고령 근로자 유지 비용이 연간 30조원을 넘길 수 있다고 추산했다. 특히 중소기업은 임금 여력이 제한적이어서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정년연장은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점진적 시행이 필요하다”며 “임금체계 개편, 직무 재설계, 청년 고용 영향 모니터링 등이 함께 이루어질 때 제도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계도 노동시장에 대한 부작용 없이 60세 이상 고용 정착을 위해서는 점진적·자율적 고용 연장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고령 노동자 재고용을 촉진할 별도 법률을 제정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정년연장의 실질적 혜택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 집중되고 청년 및 비정규직들은 소외되지 않도록 고용 연장 노력에 이어 노사 합의를 통한 선별적 고용 연장 등 단계적 제도 시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고용 연장 방식 역시 기업마다 다른 인력 상황을 고려해 다양한 방식을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보완책 없이 연내 입법이라는 목표에 매몰될 경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하고 나아가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마저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통상적으로 연간 4000에서 1만명을 고용하는데 정년이 5년 연장되면 이 기간 2만에서 5만명이 추가로 회사에 남게 된다”며 “이들에 대한 임금은 차치하고서라도 업무 공간이 1인당 2평만 잡아도 기업당 최대 10만평, 축구장 40~50개 크기”라며 현실을 말했다.
“속도보다 시장 충격 줄이는 설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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