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광장시장이 또다시 '바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한 유튜버가 순대 메뉴를 주문한 뒤 겪은 일을 담은 '이러면 광장시장 다신 안 가게 될 것 같아요'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하면서다. 시장 측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적지 않다. 특히 문제는 '소통의 방식'이다. 유튜버는 8000원짜리 큰 순대를 주문했는데, 상인이 "섞어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대부분의 손님은 "순대에 고기 몇 점을 섞어주는가 보다"라고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상인의 뜻은 달랐다. "양이 적으니 고기를 섞어 만 원짜리로 해드리겠다"는 의미였다. 2000원의 차이보다 중요한 건 신뢰다. '암묵적 약속'이 깨지는 순간, 손님은 기분이 상하고 시장 전체의 이미지는 훼손된다. 시장측은 결국 해당 점포에 10일간의 영업정지라는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번 논란은 결제 시스템의 문제도 드러냈다. 정식 매장에서는 카드 결제가 어렵지 않지만, 노점상에서는 여전히 "시스템이 안 된다"는 말이 돌아온다. 반면 많은 음식점과 편의점은 오히려 현금 결제를 꺼린다. 천 원, 백 원 단위의 현금 거래는 손님도, 업주도 불편하다. 그런데 왜 전통시장은 여전히 현금을 고집할까. 상인 입장에서는 카드 단말기를 설치하고 수수료를 부담하는 것이 번거롭고, 차라리 손으로 계산하는 게 편하다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불편함'이 아니라 '불신'이 남는다.
"현금만 받는 이유가 혹시 소득 노출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반복되는 이유다. 한국은행의 '2024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를 보면, 전통시장은 여전히 '현금의 왕국'이다. 대면 거래에서 현금 사용 비율이 56.3%로, 소매점(20.9%), 편의점(17.3%), 음식점·커피숍(8%대)을 압도한다.
전통시장은 언제나 '서민경제의 상징'으로 불린다. 대통령, 정치인, 기관장들이 카메라 앞에서 어김없이 찾는 곳이다. 법과 제도, 예산 지원에서도 전통시장은 소상공인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있다.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이 들어설 때마다 등장하는 구호도 "전통시장을 죽이지 말라"이다. '민생회복 쿠폰', '지역화폐' 같은 정책의 배경에도 전통시장 살리기가 자리한다. 실제로 소상공인시장진흥기금의 전통시장 지원 예산은 2016년 2801억 원에서 올해 5821억 원, 내년 6058억 원으로 늘었다. 지난 10년간 누적 지원액이 4조5000억 원을 넘는다.
2010년 7월 1일,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재래시장'이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전통시장'으로 바뀌었다. 낡고 낙후된 이미지를 벗고 새롭게 도약하자는 상인들의 의지가 담긴 변화였다. 그러나 일부 시장과 상인은 여전히 '재래시장'의 틀에 갇혀 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사고방식과 문화는 여전히 제자리인 셈이다. 현금만 받는 상인, 불투명한 가격, 고객과의 소통 부재가 계속된다면 '전통'이란 이름도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 전통시장이 살아남는 길은 옛 방식을 고수하는 데 있지 않다. 신뢰를 회복하고, 변화의 속도를 시장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이 진짜 '전통'을 지키고 살리는 길이다. 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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