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이들과 함께 미국 남부 텍사스를 다녀왔다. 출발 전부터 불안했다.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으로 무급 근무 중인 공항 관제사들이 생계를 위해 휴가를 내고 투잡을 뛰는 바람에 운항 지연과 결항이 잦다는 뉴스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뉴욕에서 댈러스, 휴스턴에서 뉴욕으로 오가는 항공편 모두 세 시간가량 지연됐다. 셧다운발(發) '항공 대란' 속에 결항이 아닌 게 다행이라며 불평하는 아이들을 달랬다.
미국에서 셧다운은 이제 일상처럼 굳어졌다. 매년 다음 해 예산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정책 우선순위와 이해관계, 정치적 계산으로 대치하는 일이 반복된다. 항공편 지연 같은 불편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나 이번 셧다운이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역대 최장 기록을 다시 썼다는 점 때문이다. 그것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에서, 트럼프 1기 때 세웠던 35일 기록을 넘어섰다. 트럼프는 막강한 대통령 권한에 더해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을 모두 장악한 의회를 등에 업고, 타협과 협치 대신 일방통행식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다행히 종료 수순을 밟았지만 이번 역대 최장 셧다운 사태는 이 같은 트럼프 시대의 미국 정치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는 2기 행정부를 전례 없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정적을 대놓고 공격하고, 비판자를 조롱하며,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에게 해고 위협을 일삼는다.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실제로 트럼프 1기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일했다가 비판자로 돌아선 존 볼턴은 최근 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됐다.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금리를 내리지 않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연일 해임 압박과 공개적인 조롱에 시달리고 있다. 리사 쿡 Fed 이사 역시 주택담보대출 사기 의혹만으로 경질됐다가 법원 결정으로 복귀했다. 트럼프의 리더십과 화법은 너무나 거칠고 그래서 여전히 낯설다. 미국 정치의 양극화는 더 깊어지고, 대화와 타협의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를 견제할 세력이 없다는 점이다. 참모진은 '예스맨'으로 채워졌고, 공화당은 여전히 트럼프의 정치적 그늘 아래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과 중간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하며 존재감을 잃었다. 최근 민주당이 뉴욕시장과 뉴저지·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반(反)트럼프 정서의 반사이익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 같은 트럼프 시대, 많은 이들이 달라진 미국을 말한다. '자국 우선주의' 대외 정책은 차치하더라도 미국 내부적으로 상식과 명분의 실종, 권력 집중과 견제 부재, 진영 간 극단적 대립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런 정치 풍경이 미국만의 일은 아니다. 막강한 국회 다수당을 등에 업은 강력한 정부, 대립이 일상화된 여야, 실종된 협치 등 한국 정치 현실에서도 트럼프 시대의 미국이 오버랩된다. 여당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 대법관 증원 및 재판소원제 도입 등 '사법 개혁' 명목의 일방적 입법 추진, 대통령이 연루된 대장동 사건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 등 삼권분립은 흔들리고, 권력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탄핵 사태 이후 급속히 와해돼 존재감조차 희미하다.
권력의 독주, 견제와 균형의 실종, 극단화된 진영 정치. 지금 한국과 미국의 정치는 서로 다른 듯 닮은 꼴이다. 상식은 흔들리고 명분은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비정상이 뉴노멀이 된 정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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