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정치]정청래의 빨강 넥타이, 장동혁의 파랑 넥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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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정치]정청래의 빨강 넥타이, 장동혁의 파랑 넥타이

최근 만난 한 지인은 얼마 전 겪은 곤혹스러운 일을 털어놓았다. 모임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참석했는데, 일부 참석자가 "국민의힘을 지지하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는 그렇게 묻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국민의힘 상징색이 빨강"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그는 "색깔로 사람의 정치 성향을 판단하는 듯해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는 '색깔의 자유'를 잃어버렸다. 빨강은 정열과 활력, 파랑은 신뢰와 안정감을 상징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파랑, 국민의힘이 빨강을 당 색으로 정한 뒤부터 빨강과 파랑은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한 기준이 됐다. 정당이 상징색을 정하고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색깔이 특정 정당의 전유물처럼 굳어지면서 개인의 취향과 표현이 곧바로 정치적 해석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화됐다.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이렇게 된 데는 여야 갈등이 '색깔 갈등'으로 이어진 측면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색깔=정치 성향으로 예단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다양성과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힘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당대회나 후보 선출 등 정당 중요 행사가 있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평상시에는 정치인들이 '색깔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 획일성을 벗어나 무지개 식으로 색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감, 나아가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는 것을 상징할 수 있다. 정당의 최고위원 회의나 의원총회, 기자회견 장면을 보면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참석자들의 넥타이 색깔이 비슷하다. 질리지도 않는 것 같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빨강 넥타이를 매면 안 되나?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파랑 넥타이를 매고 회의를 진행하면 문제가 있나? 때로는 노랑·보라 넥타이를 한 모습도 보고 싶다. 정치인들은 왜 그렇게 파랑과 빨강 계열 넥타이만 고집하는가.

민방위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색깔 혼란도 마찬가지다. 요즘 재난 현장에 나오는 공직자들, 정당 관계자들의 복장을 보면 갸우뚱해진다. 누구는 노란색 민방위복을 입었는데, 누구는 청록색 민방위복을 입었다. 같은 공직자인데 단체장의 소속 정당이 어디냐에 따라 옷 색깔이 다르다. 위기 대응, 재난 극복을 위한 현장에서도 서로 다른 복장을 하면 한마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메시지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신속한 협력과 통합적 대응이 어렵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편치 않다. 피해는 결국 국민이 떠안게 된다. 민방위복은 1975년부터 2005년까지는 카키색을, 2005년부터 2022년까지는 노란색을 사용했다.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청록색으로 변경했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요즘에는 노랑이 대세다.

색은 메시지다. 특정 색만을 고집하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비친다. 정치의 선진화는 정권 교체나 제도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정치인 행태의 변화도 필수적이다. 넥타이 색깔의 변화,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의 새로운 자리 등을 통해 여야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여갈 수 있지 않을까. 여야 의원들이 거창한 구호보다 상대 당 색깔의 넥타이, 색이 혼합된 줄무늬 넥타이, 파랑과 빨강을 섞으면 나오는 보라색의 넥타이를 매보면 어떨까. 임계점을 넘은 여야 갈등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보라색, 정청래 대표가 빨간색, 장동혁 대표가 파란색 넥타이를 맨 모습을 상상해본다. 신선한 충격이지 않을까.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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