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신마취유도제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로 지정한 가운데 의료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마약류 약물에 대한 철저한 관리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자칫 응급·중증 환자의 처치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남용은 반드시 막되, 일괄 조치가 아닌 미용 목적의 사용 불가 같은 '핀셋 단속'으로 균형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필수의료과 의료진을 중심으로 에토미데이트의 마약류 지정이 바이털 사인(활력 징후)이 흔들려 생명이 위험한 환자들에 대한 응급한 처치 등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에토미데이트는 응급실에서 환자에 기관삽관 등 응급처치를 할 때 주로 쓰이는 약물이다. 고통에 몸부림쳐 CT와 MRI 촬영이 어렵거나 탈구된 관절을 맞춰야 하는 등 다양한 응급상황에 사용된다. 특히 혈압 저하와 같은 부작용 없이 진정 효과를 보여 프로포폴 같은 여타의 약물들에 비해 더 효과적이고 안전하다는 평가가 의료계에서 높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에토미데이트를 오남용하는 사례가 이어지자 이 약물을 지난달 마약류로 신규 지정했다. 에토미데이트는 불법 유통 등으로 2020년부터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돼 관리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오남용 사례가 이어지며 결국 마약류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에토미데이트를 액상담배와 섞어 흡입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달 홍콩에서 밀수입한 에토미데이트를 강남 유흥업소에 유통한 일당 7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따라 에토미데이트의 국내 공급이 지속될지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마약류로 지정되면 의약품 수입부터 투약까지 모든 단계에서 취급 보고 위무가 부여돼 실시간 정부 모니터링이 이뤄진다. 국내 판매 협업사 역시 마약류 관리 허가가 필요해진다. 에토미데이트 제조사인 독일 비브라운의 국내 판매 협업사 한올바이오파마는 마약류 관리 허가를 받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브라운은 에토미데이트의 한국 수출 지속 여부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훈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정책이사는 일각의 일탈적 사용을 포함해 일선 미용 병원 등에서의 오남용 사례 등이 폭넓게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도 "에토미데이트 대신 프로포폴 등 상대적으로 더 위험성이 높은 약물을 사용하게 되면 의사들이 응급 상황에 적극적으로 소신껏 대응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정책이사는 그러면서 "오남용을 막기 위해 밀수를 차단하고 일선 미용 병원들에서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등 정교한 핀셋 규제 성격의 대안이 필요하다"며 "꼭 필요한 필수의료에서까지 사용을 어렵게 하는 건 응급·중증 환자의 처치와 치료에 관한 의료 현장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지방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응급환자를 진정시켜서 잠들게 한다는 원리는 큰 틀에서 비슷하지만, 대체재로 언급되는 다른 약물들에 견줘볼 때 에토미데이트는 그 용도가 아예 다르다"면서 "에토미데이트의 경우 혈압이 갑자기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바이털 사인이 크게 흔들리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아 글로벌 의료계에서 기도 삽관 매뉴얼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당국이 보완책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