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딥테크(첨단 기술) 시장에서 한국은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을까. 최근 서울 강남구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에이티넘) 본사에서 만난 맹두진 사장(딥테크 부문 대표)은 이 같은 아시아경제의 질문에 "파운데이션 모델(광범위한 데이터로 학습된 범용 AI 신경망) 경쟁 단계에서 이제는 제조 현장과 모빌리티 등 실제 산업에 AI를 접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맹 사장은 "최근 주목하는 '피지컬 AI'(로봇의 물리적 기능과 AI의 결합)는 산업별 전문성과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라며 "명확한 목표를 갖고 현장에 바로 적용 가능한 기술에 집중한다"고 강조했다.
에이티넘은 1988년 설립된 1세대 VC로, 국내 최대 결성액을 자랑하는 8600억원 규모의 '에이티넘성장투자조합2023 펀드'를 포함해 5개의 메가 펀드를 운용 중이다. 이 같은 '원펀드 전략'에 따라 2023년 ▲딥테크 ▲서비스·플랫폼 ▲바이오 ▲게임·콘텐츠 등 4개 섹터(업종)별 부문 대표제를 도입했고, 맹 사장은 약 2조원 규모의 에이티넘 운용자산(AUM) 중 30%가량이 집중된 딥테크 부문을 이끌고 있다.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 마무리…이제는 '현장 적용' 주목해야"
맹 사장은 공학박사 출신으로, 삼성전자 연구원을 거쳐 2002년 VC 업계에 뛰어들었다. 전업 계기에 대해 묻자 "솔직히 이렇게 25년이나 할 줄은 몰랐다"고 웃으면서도 "기술 경험을 살려 비즈니스(경영)를 하고 싶었다. 새로운 창업자와 기술을 끊임없이 만나는 일에 큰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엑시트(회수) 사례는 로봇 분야의 클로봇과 씨메스가 있다. 둘 다 2019년 첫 투자 이후 지속적인 후속 투자를 거쳐, 지난해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스마트팩토리 분야의 티라유텍(현 LS티라유텍), 반도체 분야의 오픈엣지테크놀로지, 비씨엔씨 등도 상당 부분 엑시트를 마쳤다.
이 밖에 다임리서치(강화학습 기반 제조 효율화), 라이드플럭스(자율주행소프트웨어), 보스반도체(차량용 AI 반도체) 등도 대표적인 투자 사례다. 해외에선 구글과 협업 중인 로봇 기업 앱트로닉(Apptronik)에도 투자했다. 앱트로닉은 최근 50억달러(약 7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맹 사장은 "좋은 기술이 꽃 피우기 위해선 시장의 수요와 채택이 필요하다. 문제는 기술을 접목하는 과정"이라며 "에이티넘 딥테크 부문 심사역 다수가 엔지니어 출신으로 높은 도메인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여러 기업을 접하며 쌓은 '현장 이해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업이 기술을 시장으로 연결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내년 차기 펀드 조성 본격화…타이밍 선택이 VC 투자 성과 갈라"최근 주목하는 분야는 피지컬 AI다. 맹 사장은 "그간 파운데이션 모델 경쟁은 대규모 자본이 투입돼야 하는 '규모의 게임'이었다. 여기서 한국이 경쟁력을 갖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피지컬 AI 분야에선 한국의 '제조업 경험'이 중요한 강점이 된다"며 "미국은 제조업이 후퇴하면서 기술의 현장 적용 능력도 잃게 됐다. 빅테크들이 대부분 소프트웨어 회사다 보니, '제조업 DNA'가 실종된 것이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홀리데이로보틱스(휴머노이드), 디든로보틱스(족형보행 로봇) 등에 잇따라 투자했다. 맹 사장은 홀리데이로보틱스에 대해 "외부 상호작용에 최적화된 산업 현장용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며 "가벼운 팔과 정밀한 손가락으로 다양한 조립 공정을 자동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든로보틱스에 대해선 "보행 제어로 조선 현장의 실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이라며 "용접 로봇팔은 이미 도입됐지만, 사람이 격벽·고소 작업 구간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가장 큰 불편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디든로보틱스의 족형 로봇은 이 접근 자체를 대체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는 'AI 버블론'에 대해선 회의적으로 평가했다. 맹 사장은 "무엇을 버블로 규정하는지 불명확하다"며 "물론 구체적인 과열 지점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만, AI는 이미 정해진 길이며, 효율성을 무기로 계속해서 시장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겠지만, 결국은 올라가야 할 산"이라고 단언했다.
에이티넘은 내년부터 차기 펀드 조성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2023년 만든 펀드가 내년 하반기 4년 차에 접어들면서 포트폴리오 구축을 마무리할 시기라는 판단에서다. 새로 만들 펀드의 규모나 원펀드 전략 유지 여부는 미정이다. 맹 사장은 "호황기든 혹한기든 투자란 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혹한기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에이티넘은 2년 전에도 8600억원 펀드를 조성한 하우스"라고 강조했다.
특히 투자 타이밍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펀드 성과는 어느 회사를 선택했느냐보다 '어느 시기에 어떤 분야에 주력했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지금 호황이라는 AI, 로봇, 자율주행 분야는 이미 투자가 돼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VC 투자는 어떤 분야에 얼마나 자금을 배분하고, 기업 성장의 어느 단계에서 투자할지가 관건"이라며 "섹터마다 가치 창출이 일어나는 시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펀드 수명이 8~10년인 만큼, 지금 내리는 결정이 미래의 성과로 나타난다. 어떤 씨앗을 심을지 고민하는 것이 내년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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