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딱 한 달 간의 노벨상 후유증…사회·대학에서의 축적과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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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맥]딱 한 달 간의 노벨상 후유증…사회·대학에서의 축적과 혁신

연말 노벨상 발표에 우리 사회와 대학은 아쉬움과 자괴감에 시달리고, 이런 현상은 딱 한 달 정도 지속된다. 그러다가 이내 뇌리에서 잊혀지며 한 해가 저문다. 우리 사회와 대학이 노벨상을 염원하는 것은 노벨상이 지적자산의 사회적 인정, 장기적 연구생태계의 지표임은 물론 국가 이미지와 연구의 자존감 면에서 말로 형언하는 것 이상의 무게감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에 지적 외교자본이면서 수상자들이 만들어 내는 국격의 상승효과가 막대하기에 정부도 이를 지속적으로 바라고 있다. 이런 염원이 성취되기 위한 조건에는 2가지 있다. '축적'과 '혁신'이다.


한국사회는 유난히 리셋문화가 강하다. 대통령이 바뀌면 국가정책이, 총장이 바뀌면 대학의 비전이, 사장이 바뀌면 회사의 전략이 거침없이 바뀐다. 전임자의 철학과 성과는 쉽게 부정되고, 새 리더십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기존 시스템을 갈아엎는다. 변화의 속도는 빠르지만, 그만큼 축적의 깊이는 얕아진다.


이정동 교수는 '축적의 시간'에서 "혁신은 발명보다 축적에서 온다"고 했다. 한국은 '속도의 경제'에서는 성공했지만, '축적의 경제'에서는 여전히 미숙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빠르게 복제하고 개선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실패와 시행착오를 기록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능력은 약하다. 진정한 혁신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보다 실패의 경험을 반복하고 학습하는 과정 속에서 태어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최근 정부의 연구개발(R&D) 정책의 일관성 부재, 대학의 분야별 교수 연구실에서의 지속성 미비는 이러한 축적을 가로막는 주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파편적인 연구는 다음 세대에 전해지지 못하는 가능성을 증대시키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미국과 일본은 '축적의 문화'가 뿌리 깊다. 국가 역사가 일천한 미국에서는 무엇이든 보존의 문화 뿌리가 깊다. 일본의 경우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별 지역별 과학기술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되고, 연구의 성과는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 것이 많다.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 다수는 30~40년 전 시작된 기초연구를 꾸준히 이어온 결과이다. "내 세대에 결과를 내지 않아도, 다음 세대가 완성시킨다"는 사회적 신뢰가 그들의 과학 생태계를 지탱한다고 본다. 속도보다 방향을 중시하고, 개인보다 시스템에서의 축적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으며 그사이 연구의 결과물은 축적되고 성숙되는 듯하다.


반면 한국의 연구, 더 나아가 정치와 행정은 단기성과 중심이다. 임기 안에 '보여줄 성과'를 내기 위해 정책이 자주 바뀌고, 행정의 철학은 흔들린다. 연구비는 장기적 기초연구보다 즉각적 결과에 쏠리고, 교육정책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다시 설계된다. 이런 단절의 구조 속에서 '세대 간 학습'보다 '세대별 재시작'이 반복된다. 혁신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것의 필요조건일 수도 있는 축적이 너무 쉽게 무시된다면 이 또한 문제다.


'바꾸는 리더십'이 아니라 '쌓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기업은 기술의 계보를 관리하고, 대학은 연구의 맥락을 이어가며, 정부는 정책의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과거의 반도체, 현재의 HBM, GPU와 미래의 AI 및 AI칩으로 이어지는 기술생태계에서도 축적과 혁신은 여전히 중요하다.


교육·연구의 산실인 대학, 그리고 정치의 모든 현장에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세대의 축적이 다음 세대의 자산이 될 때, 진정한 혁신의 토양이 비로소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축적이 일어나는 방향과 형식으로 연구비를 대학과 사회에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럴 때 노벨상의 염원도 달성될 수 있다.


최기주 아주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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