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WKBL 제공 “여자들아 기죽지 마라. 당당하게 외쳐라.” 2010년 히트곡 다비치·씨야·티아라의 ‘원더우먼’ 가사 중 일부다. 이 노랫말처럼, 여자프로농구(WKBL) 코트에서 여성 지도자들이 당당하게 자신들의 시대를 열어젖힌다. 리그 출범 최초로 여성 감독 간 맞대결이 펼쳐진다. 박정은 BNK 감독과 최윤아 신한은행 감독이 오는 16일 개막전부터 맞붙으면서 여성 감독 시대의 신호탄을 쏜다. ‘신한은행, 너 나와!’라고 외쳤다. WKBL은 개막전 홈팀이 상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지난 시즌 우승팀인 BNK는 모기업인 BNK금융이 타이틀스폰서를 맡으면서 개막전을 개최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박 감독은 올해 사령탑으로 첫 도전에 나서는 최 감독의 신한은행을 호명하며 ‘디펜딩 챔피언’의 자신감을 드러냈다.
여성 감독 역사의 주인공이다. 박 감독은 지난 시즌 여성 사령탑 최초로 우승을 달성했다. 선수 시절 삼성생명에서 ‘명품 포워드’로서 이뤘던 5회 우승에 이어,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정상에 오르는 최초의 기록도 썼다. 박 감독은 우승 후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를 내방해 “여성, 남성을 떠나 그저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서 “아무래도 남성 위주라 여성이 설 곳이 많지 않다. 누군가는 깨야 했고 내게 기회가 왔다”고 말한 바 있다.
사진=WKBL 제공 WKBL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선배가,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후배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던졌다. 박 감독은 “사실 내가 경력이 길지 않아 조언할 게 없다”면서도 “WKBL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 악물고 뛰어야 한다. 치열한 리그지만 든든한 선배 언니가 있으니 마음 편하게 먹고 했으면 좋겠다”고 최 감독에게 조언했다. 아직은 긴장한 티가 난다. ‘레전드 가드’ 출신 최 감독은 2017년 은퇴 후 신한은행, BNK, 여자농구국가대표팀 코치를 지냈다. 감독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3월 부임하면서 WKBL 4호 여성 사령탑(감독대행 제외)이자,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선수 시절 몸담았던 팀의 사령탑이 됐다. 그는 “감독이 되니까 선수들이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다. 부담스럽다”며 “미디어데이(10일) 아침도 나오자마자 긴장이 되더라”고 웃었다.
사진=WKBL 제공 어깨가 무겁다. 최 감독은 2004년부터 신한은행에서만 14년 동안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다. ‘레알 신한’의 주전 가드로 2007시즌부터 2011~2012시즌까지 6회 연속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현재 신한은행은 그 명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최근 2시즌 간 봄농구 구경도 못했다. 전망 역시 냉혹하다. 미디어의 우승팀 예상 설문조사에서 단 한 표도 얻지 못했다. 최 감독은 “우리 팀 현실이라서 크게 서운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서툴지만 차근차근, 명예회복을 위해 뛴다. 최 감독은 미디어데이에서 출사표로 ‘푸른 장미’를 꼽았다.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그리고 기적 같은 성공이라는 꽃말이 있더라.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을 끝내 현실로 만들어가는 팀이었으면 좋겠다”며 “사실 장미 가시가 매우 날카롭다. 매서운 팀의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WKBL 제공 한국 여자농구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에이스들, 한때 같은 리그에서 땀 흘리던 두 선수가 이제는 벤치에서 마주 선다. 승부의 결과보다 중요한 건 코트에 세우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여성 감독 시대의 첫 장, 그 역사적인 한 페이지가 이제 막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