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만화들이 한국의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다. '귀멸의 칼날', '체인소맨', '주술회전' 모두 메마른 극장가의 단비처럼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런데 이 만화들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괴물, 혈귀, 악마 같은 존재들이 퇴치의 대상으로 등장하면서도 동시에 인간과 융합된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즉 '반인만마'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이 만화들의 중심에 있다.
'귀멸의 칼날'의 주인공 탄지로는 혈귀가 된 동생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리려 한다. '체인소맨'의 덴지는 체인소 악마와 결합한 인간이며, '주술회전'의 이타도리 유지에게도 주령이 깃들어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진격의 거인'도 인간과 거인의 결합된 존재가 주인공이며, 심지어 최근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루미도 인간과 악귀가 섞인 형태를 보여준다.
이런 설정은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인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드러낸다. 한때 인간은 자신을 순수하고 이성적인 존재로 믿었다. 악은 외부에 있었고, 인간은 그것을 물리치는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20세기를 통과한 인류는 자신이 결코 순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웠다. '옳음'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과 독재, 이념의 광기는 선악의 구분 자체를 무너뜨렸다. 이제는 어둠과 욕망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실하다는 감각이 시대의 정서가 되었다.
특히, 이러한 정서는 오늘날 '해방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효율화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끝없이 '정상'과 '성공'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다듬는다. SNS에서는 감정마저 편집되고, 분노나 슬픔은 보기 좋게 필터링된다. 하루의 기분조차 '좋아요' 수로 평가받고, 허약한 자존감을 쌓아 올린다. 그런 세상에서 괴물은 정반대의 존재다. 그는 남 눈치 보지 않고, 꾸미지 않으며, 숨기지 않고, 감정이 이성보다 먼저 폭발한다.
'체인소맨'의 덴지가 피투성이가 되어 웃고, '주술회전'의 유지가 괴물의 힘을 빌리며 울부짖는 장면에서 우리는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가 억눌러온 본능, 실패, 분노, 슬픔의 다른 얼굴이다. 현실의 인간은 너무나 많은 규율 속에 산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나락'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팽배한 감시사회, 타인의 시선과 자기검열, AI 알고리즘에 따라 분석되고 만들어지는 취향으로부터 '괴물'은 자유롭다. 괴물은 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사람'의 규격을 모조리 부숴버린다. 그래서 완벽한 영웅보다 결함 있는 반인반마에게 더 끌린다.
특히, 최근의 AI 발전은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더 집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인간만의 것, 인간만의 능력이라 믿었던 많은 부분들이 흐릿해지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도 깊어진다. 당최 우리 '인간'이란 무엇일까? 어떤 점에서 특별할까?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을 명료하게 규정짓거나 경계 지을 수 없는 시대에 이미 진입했다.
이 해체와 혼종의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대답이 저 '반인반마' 만화들 속에 조금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모두 '인간'을 지키려 한다. 아무리 자기 존재가 무엇인지조차 헷갈리는 상황이 되어도, 인간으로서 인간과 맞잡은 손은 놓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건너기 위한 가장 귀중한 힌트일지도 모른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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