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담(手談)]마음으로 빚어야 집이 견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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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담(手談)]마음으로 빚어야 집이 견고해진다

마음가짐이 결과를 지배한다는 말, 바둑에도 어울리는 얘기다. 상대의 수를 얕잡아 보고 대국에 임하면 그물은 엉성해진다. 대어는커녕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역습에 고전하며 서서히 전세가 기운다. 언제든 역전하리란 생각이 앞서니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지도 못한다.


변에 집을 지으려 할 때, 두 칸 벌림이 적당한데 네 칸 벌림의 만용을 부리면 자기 집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허술해질 뿐이다. 귀에 집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다. 중원을 향해 크고 넓게 돌을 놓는 것은 자기 안방에 상대의 침입을 유도하는 꼴이다. 작은 그릇 하나를 빚을 때도 정성을 다해야 하거늘, 마음이 둥둥 떠서 대국에 임하니 바둑 모양이 좋을 리 있겠는가. 대국을 바라보는 시야는 좁아지고, 형세 판단에도 균열이 생긴다.


더 나쁜 것은 근거 없는 낙관이다. 형세가 불리할지 모른다는 마음속 불안을 봉인한 채, 희망 어린 진단의 항아리에 자기를 가둔다. 밖은 비바람 몰아치는 혹독한 환경인데, 항아리 안에서 태평성대의 상상에 흠뻑 젖는다. 현실과 희망의 괴리가 자기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술에 취해 황홀경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건만,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면 기회는 상대에게 돌아간다. 상대는 대나무 살에 불과한 건축 재료를 갖고도 자기 집을 단단하게, 토대부터 빈틈없이 쌓아 올린다. 연약해 보였던 대나무 한 움큼은 어느새 단단한 뼈대의 일원이 돼 서로를 연결한다. 어지간해서는 침입할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자기 공간을 방어한다.




재료의 우열이 곧 결과의 귀결은 아니다.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해도, 느슨한 마음이 켜켜이 쌓이면 바둑의 밑그림이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상대의 공격을 정신없이 방어하는 사이, 대국은 이미 끝나 있다. 고개를 숙이고 돌을 거둬야 하는 그때가 돼서야 깨닫는 현실의 냉혹함. 뒤늦은 후회로는 결과를 되돌릴 수 없다.


민심을 빚어야 하는 정치인도 정성으로 임해야 뜻을 이룰 수 있다. 희망의 에너지를 부족함 없이 채워가야 민심이 뒤를 따른다. 근거 없는 낙관에 취해 허송세월할 여유가 없다. 집을 다 짓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민심 앞에 겸허해져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한다.

항아리 밖의 냉혹함을 직시하며, 힘겹게 버텨내는 이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말의 성찬에 취해 세월을 낚는 우(愚)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말이 아닌 실천으로 다름을 입증해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엉성했던 집의 뼈대가 견고해지고 있음을, 비가 새던 지붕이 말끔히 고쳐지고 있음을 민심의 눈으로 확인시켜야 한다.


정치의 강물이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장애물에 부딪히며 휘어지고, 마침내 새로운 물줄기를 낳는다. 그 뒤에 당도하는 거대한 강물의 회오리가 공간을 집어삼키면 과거와는 다른 지형이 만들어진다. 내일을 준비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운명도 갈린다. 산산조각이 난 현실을 보며 망연자실할 수도 있고,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집을 보며 안도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의 태도, 그것이 집의 견고함을 결정한다. 바둑에서도, 정치에서도….






류정민 정치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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