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향후 5년간 450조원을 국내에 투자하기로 하면서 그룹이 중점적으로 키우려는 미래 사업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반도체와 AI 인프라, 차세대 배터리, 첨단 디스플레이, 고부가 패키지기판까지 전 계열사 투자 방향이 미래 제조 경쟁력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삼성전자는 16일 최근 임시 경영위원회를 열고 평택캠퍼스 2단지 5라인(5공장) 골조 공사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AI 확산에 따른 고성능 메모리 수요 증가에 대비해 생산능력을 선제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삼성전자는 이번 투자 계획의 핵심을 반도체 생산능력 확충으로 제시했다. 평택캠퍼스 5공장(2단지 5라인) 공사를 개시하며 메모리 중심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를 강화한다.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5공장은 AI 확산에 따라 늘어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수요 대응을 위한 장기 투자로, 기반시설 확충까지 포함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능력 확충을 이번 450조원 투자 계획의 핵심 축으로 설정한 이유는 단순한 증설이 아니라 글로벌 메모리 시장 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AI 서버 증가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메모리 생산능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중심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를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5공장은 2028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규모가 커지고 GPU(그래픽처리장치) 기반 연산량이 증가하면서 HBM과 서버용 D램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삼성은 HBM·D램과 낸드플래시 등 주요 제품의 수요 변동성이 과거보다 커졌다는 점을 고려해 생산시설을 기존보다 더 앞당겨 확보하는 전략을 택했다. AI 시장이 빠르게 확장되는 상황에서 생산라인 확보 시점이 경쟁사와의 격차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 공급망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 만큼 단일 국가 내 안정적인 생산기지를 확보하는 것이 장기 대응에 유리하다는 판단도 있다.
평택 5공장은 기반시설 확충과 대규모 장비 투자가 함께 이루어지는 프로젝트다. 라인이 완성될 경우 삼성의 메모리 생산 비중이 평택으로 더욱 집중되고, 전체 공급망에서 평택단지가 미래 AI 시대에 맞는 핵심 생산 허브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회사는 보고 있다.
AI 인프라 분야도 삼성의 미래 전략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영역으로, 삼성SDS가 사실상 그룹의 'AI 인프라 총괄' 역할을 맡는다. 초거대 AI 학습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이 국가적으로 부족해지는 가운데, 삼성은 자체 AI 서비스뿐 아니라 국내 산업 전반의 연산 기반을 키우는 방향으로 투자 범위를 넓히고 있다.
삼성SDS는 전남에 대규모 AI데이터센터를 새로 구축한다. 이 센터는 국가 AI컴퓨팅센터 설립을 위한 특수목적회사(SPC) 컨소시엄에서 삼성SDS가 주사업자로 참여하는 형태다. 2028년까지 GPU 1만5000장 규모를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이 초거대 AI를 개발하려면 고성능 GPU 인프라 접근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현재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초기 투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국가 단위 AI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이 시설은 학계·스타트업·중소기업에 컴퓨팅 자원을 공급하는 공공 성격의 인프라로 운영된다.
또한 삼성SDS는 경북 구미 1사업장 내에 AI 특화 데이터센터를 별도로 구축한다. 이곳은 삼성전자와 계열사들이 개발하는 AI 서비스, 온디바이스 AI, 대규모 모델 학습 등을 위한 '삼성 내부 AI 허브' 역할이 중심이다. 최근 반도체·모바일·가전·네트워크 등 삼성 주요 사업부가 모두 AI 기능을 확대하고 있어, 그룹 전체가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산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전남 센터는 '국가·산업 생태계용', 구미 센터는 '삼성 내부 기술개발용'이라는 이원화 전략이 구축될 것으로 보이며, 삼성은 AI 시대의 기반 인프라를 외부·내부 양축으로 동시에 키우는 구조를 갖추게 된다.
산업용 공조기 사업은 삼성이 이번 투자 계획에서 새롭게 육성하는 비메모리 기반 성장축으로, 데이터센터와 대형 산업시설의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글로벌 변화가 배경에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냉각·환기·습도 제어 등 고효율 공조기술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고, 삼성은 이 시장을 전략적으로 선점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11월 초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 플랙트그룹 인수를 완료했다. 플랙트는 중앙공조 시스템에 강점을 가진 회사로, 대규모 산업시설·병원·데이터센터 등 에너지 효율이 중요한 시설에 특화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은 기존에 보유한 가정·상업용 개별 공조(냉난방·환기) 제품군과 플랙트의 중앙공조 기술을 결합해 하나의 통합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데이터센터 시장에서의 공조 수요 급증도 삼성이 이 분야를 전략사업으로 선택한 이유다. GPU 기반 초거대 AI 연산이 늘수록 발열량은 폭증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고효율 냉각 시스템의 중요성이 커진다. 단순 냉방이 아니라 공조·열교환·에너지 회수까지 포함한 종합 솔루션이 필요해지면서 플랙트의 기술 경쟁력이 부각되는 구조다.
플랙트는 광주광역시에 한국 생산라인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제조 기반을 마련하면 공공·데이터센터·스마트빌딩 등 빠르게 성장하는 국내 수요에 즉각 대응할 수 있고, 아시아 시장 공급망도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삼성전자는 광주 생산라인이 구축될 경우 설계·제조·제어 시스템까지 하나로 통합한 공조 시스템 사업을 본격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이 추진하는 구도는 '개별 공조(삼성전자), 중앙 공조(플랙트), AI 데이터센터 인프라(SDS)'를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뿐 아니라 스마트팩토리, 병원·연구시설, 친환경 빌딩 등 고부가 공조 산업 전반에서 사업영역을 넓히는 것이 목표다.
배터리 분야에서는 삼성SDI가 차세대 기술인 전고체 배터리의 국내 생산 기반 구축을 본격 검토하고 있다. 회사는 전고체 배터리를 '향후 양산 전환이 필요한 전략 기술'로 규정하고 울산 사업장을 유력한 생산거점 후보지로 올려놓고 검토 중이다.
삼성SDI는 2023년 3월 국내 배터리 업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수원 SDI연구소에 설치해 같은 해 말부터 시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이후 여러 고객사에 시제품을 공급해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공정 안정성과 성능 검증을 거쳐 2027년 양산을 목표로 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가 높아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로 꼽히는 만큼, 상용화 시점을 앞당기기 위한 선행 검증과 설비 투자가 병행되는 구조다.
최근에는 독일 BMW와 '전고체 배터리 실증 프로젝트'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완성차와의 검증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SDI는 고객사 실증 과정과 파일럿 라인 운영을 통해 전고체 배터리의 설계·공정·품질 기준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양산 전환에 필요한 생산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내년 중순 양산을 목표로 충남 아산사업장에서 8.6세대 IT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 체제를 본격화한다. 태블릿·노트북 등 IT 기기용 중대형 디스플레이 시장 확대에 대응한 투자로, 올해 말부터 시험가동이 시작된다.
반도체 패키지기판은 삼성전기가 집중 육성하는 분야다. 부산사업장에서 고난도 서버용 패키지기판(FC-BGA)을 개발·양산하고 있으며, AI 가속기 확산에 따라 수요가 늘어나는 고성능 서버용 기판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 공급 확대와 신규 고객 확보도 병행된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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