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맛이 개운치는 않았지만, 어쨌든 목표로 했던 ‘승리’ 두 글자는 얻어냈다. ‘홍명보호’가 남미의 ‘복병’ 볼리비아를 상대로 답답한 경기력 속에서도 승리를 일궈내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에서 ‘포트2’ 사수에 청신호를 켰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볼리비아와의 11월 A매치 첫 경기에서 ‘캡틴’ 손흥민(로스앤젤레스FC)의 프리킥 선제 결승골과 1년8개월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조규성(미트윌란)의 쐐기골에 힘입어 2-0 승리를 거뒀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2위로 조 추첨 포트2가 주어지는 23위 안에 들어 있는 한국은 18일 가나전도 승리를 일궈낼 경우 포트2 사수를 확정지을 수 있다.
한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볼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2-0으로 승리한 뒤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전=뉴시스 랭킹 유지를 위한 승리가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목표는 달성했지만,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FIFA 랭킹만 봐도 한국은 22위, 볼리비아는 76위로 54계단이 차이가 난다. 이 정도 차이라면 압도해도 모자랄 판국에 상대의 거친 맨투맨 수비를 뚫어낼 다양한 공격 패턴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상대 역습에 수비는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황인범(페예노르트), 백승호(버밍엄시티) 등 중원 핵심 자원들이 부상 이탈했다고 해도, 볼리비아도 볼리바르 구단에서 뛰는 선수들의 차출 거부, 주장 루이스 아킨의 비자 문제로 인한 입국 실패 등으로 평균 연령 23세로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돼 전력이 온전치 못했다.
전반 내내 답답한 경기력으로 일관하던 ‘홍명보호’를 구해낸 건 역시 주장 손흥민이었다. 후반 10분경 황희찬이 상대 페널티 박스 좌측 외곽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오른발로 완벽하게 감아차 골대 오른쪽 상단으로 빨려들어가는 환상적인 골을 터뜨렸다. 손흥민은 경기 뒤 “경기력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승리를 챙긴 게 더 중요했다. 우리 대표팀에는 킥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세트피스가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후반 31분 손흥민 대신 투입돼 1년8개월 만에 A매치 복귀전을 치른 스트라이커 조규성의 복귀 득점포가 가장 큰 위안이었다. 조규성은 상대 문전 앞에서 수비의 치열한 몸싸움을 이겨내며 쐐기골을 터뜨렸다. 유니폼을 잡고 흔들며 포효한 조규성은 대표팀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슬로건인 ‘한계를 넘어 하나 된 Reds’가 찍힌 코너 플래그를 펼치는 세리머니로 ‘월드컵 스타의 귀환’을 알렸다. 조규성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가나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2골을 터뜨리며 ‘깜짝 스타’로 발돋움했다. 한국 축구 사상 첫 월드컵 멀티골이었다. 경기 뒤 믹스트존(취재공동구역)에서 만난 조규성은 “오랜만에 대표팀에 와서 경기에 뛸 줄 몰랐는데, 감독님이 기회를 주셨고 골까지 넣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많은 팬 앞에서 득점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골 상황에 대해선 “집념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 몸싸움을 이겨내고 밸런스가 무너졌는데, 골을 넣고 싶다는 집념 하나로 넣었던 것 같다”고 설명한 그는 “세리머니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보니 월드컵 문구가 쓰여 있더라. 뭔가 잘 맞았던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무릎 부상 이후 합병증으로 인해 2024∼2025시즌을 통을 날렸던 조규성이 이번 A매치 2연전 이후 소속팀에 복귀해 컨디션을 더 끌어올린다면 홍명보 감독으로선 더 다양한 공격옵션을 보유할 수 있다. 소속팀에서 절정의 골 감각을 자랑하고 있는 오현규(헹크)에 조규성이 원톱 스트라이커 역할을 소화해주면 손흥민을 측면으로 돌려 한층 더 상대 수비의 견제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다.
이날 홍 감독은 9, 10월 A매치에서 실험했던 스리백 대신 원래 쓰던 포백 전술을 들고나왔다. 빌드업 과정이나 역습 수비에 흔들리는 모습이 나왔지만,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낸 것에 대해 홍 감독은 “얼마나 짧은 시간에 수비 전술을 변형해서 적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험하고 싶었다”면서 “한두 장면은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수비 조직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대전=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