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맥]대미 관세 협상, 플랜B가 있었나

글자 크기
[시장의 맥]대미 관세 협상, 플랜B가 있었나

지난 14일 한국과 미국은 통상·안보 팩트시트 발표로 '트럼프 관세'를 일단락지을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자동차를 포함한 대부분 품목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고 한미 동맹 재인식, 조선분야 협력(마스가), 핵추진 잠수함(핵잠) 건조와 핵연료 협력 등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을 수용했다.


그 대가로 우리나라는 통상분야에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1500억 달러 기업 투자, 농업 분야 비관세장벽 개선, 미국 자동차 표준(FMVSS) 인정, 망사용료 등에서 미 테크기업 관심사항 등을 수용하기로 했다. 국방안보 분야에서는 우리나라 국방비를 국민총생산(GDP)의 3.5%로 인상, 미국산 무기 250억 달러 구입, 주한 미군에 대한 330억 달러 지원 등을 약속했다.


통상 분야에서 가장 큰 이슈는 3500억 달러 투자로 인한 외환시장 불안이었다. 특수목적법인(SPV)에 대한 현금 투자 2000억 달러와 마스가 1500억 달러를 확정지었다. 다만 현금 투자는 '상업적 합리성'이 담보되는 분야에 투자하고 외환시장 부담을 줄이기 위해 10년간 연간 최대 200억 달러를 설정했다. 외환시장 비상금을 미국에 투자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몇 가지 안전장치를 포함했다.


그러나 현금 투자의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던 '한미 통화스와프'는 미국의 반대로 불발됐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었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은 기납부 관세 소급 시점을 8월 초로 확정했지만 우리나라는 잘해야 11월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안보 분야에서의 최대 관심사항은 핵잠 건조 장소다. 우리나라는 경주 한미 정상회의에서 언급했던 국내 건조를 당연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정상회의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임을 밝혔다.


아쉽게도 팩트시트에는 건조 장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미국은 핵잠 건조를 승인하면서 미국의 법적 요건에 따라야 함을 적시했다. 이는 어디서 만드냐와 직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군함·핵잠이나 핵연료 문제는 미 의회의 여론이 중요하고 존스법, 번스-톨레프슨 수정법, 국방물자관리규정, 원자력 에너지법 등 미국 내 까다로운 법적·행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즉 미국은 핵잠에 대해 원론적인 언급만 하고 미국산 무기 250억 달러 구매와 주한 미군 330억 달러 지원까지 약속받았다. 전형적인 '트럼프식' 거래다.


통상규범에 따라 '주고받는' 국제협상이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상대국을 강압적으로 대하는 협상으로 상호 '윈윈'하는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만이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SPV 현금 투자하기로 하고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어처구니없는 협상을 한 일본과의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 플랜B 준비에 소홀했고 타이밍을 놓쳐 일본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지난 몇 개월 협상 과정을 돌이켜 보면 버티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막판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최악의 패를 잡은 일본 방식을 택했다. 현금 투자 약속만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미 협상 결과는 EU 등 다른 국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팩트시트는 조약과도 다름없다. 15% 관세를 제외하고는 미국은 마스가와 핵잠 등에서 자국의 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앞으로 미측은 합의 이행을 점검하는 채널을 요구할 것이다. 한미 FTA보다 더 큰 국민경제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트럼프 관세는 미·중 갈등 및 중국의 '기술 굴기' 견제 과정에서 잉태된 것이다. 팩트시트 곳곳에 중국 관련 사항이 제시돼 있다. 미국은 팩트시트로 약속을 받아냈고 이를 이행하는 절차를 집요하게 요구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







▶ 2026년 사주·운세·토정비결·궁합 확인!
▶ 십자말풀이 풀고, 시사경제 마스터 도전! ▶ 속보·시세 한눈에, 실시간 투자 인사이트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