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안(至安), 편안함에 이르렀나."
"네…."
많은 이에게 위로를 안겨준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관통하는 명대사다. 상처받은 영혼의 심장에 울림을 안겨준 무언의 대화. 힘겨웠던 서로의 삶을 치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희망의 언어는 그렇게 전염된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세상이라고 여기며 현실을 이겨내도록 응원하는 힘이 있다.
공감의 너울이 서로를 연결할 때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는 1년 전 그날, 우리 모두가 경험했다. '비상계엄 선포'라는 자막이 TV 화면 하단에 커다랗게 자리 잡았던 12월3일, 어떤 이는 가던 길을 멈췄다.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이도 있다. 오후 10시28분9초에 전해진 긴급 속보는 우리 사회를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게 했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순간, 혼돈의 시간이 시작됐다. 충격과 불안, 공포의 회오리가 휘감았던 지난겨울, 공멸의 위기 앞에서 우린 기어이 해법을 찾아냈다. 100만명이 넘는 시민의 함성이 서울 여의도를 채울 정도로 거대한 일렁임이 일었다. 그렇게 생성된 공감의 메아리는 세계를 놀라게 했던 민주주의 회복력의 토대였다. 시렸던 겨울과 혼란스러운 봄, 격정의 여름을 보내고 다시 맞이하는 12월, 사회는 과연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을까.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던 우리에게 지난 1년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책임자는 응당한 처벌을 받았는지 자문한다면 한숨부터 나온다. 핵심 책임자 중, 진정으로 반성한 이가 있었던가. 수사와 기소 그리고 여러 재판이 이어졌지만, 변명과 책임 전가의 언어만 들려온다.
우리 사회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할 사법 시스템은 믿음의 궤도를 벗어나 있다. 재판 지연 논란과 올해 안에 1심 선고가 사실상 어렵다는 전망은 우려를 낳는다. 일부 재판부는 사안의 엄중함과는 어울리지 않게 여유로움마저 엿보인다. 역사에 남을 사건의 법관임을 인식하고 재판에 임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쯤 되면 우리 사회는 헌법재판소 심리 당시 쟁점이었던 근원적인 물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날 일을 그저 하나의 해프닝으로 여길지에 관한 물음말이다.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뭐 지시를 했니, 받았니, 뭐 이런 얘기들이 마치 그 어떤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 같은 걸 쫓아가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
헌재에서 밝혔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이런 설명은 그날 사건의 위중함을 반영하고 있을까. 무장한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국회를 침탈한 사건이 어떻게 별것 아닌 일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언제든 유사한 사건이 재연될지 모른다. 판단의 균형추가 흔들리는 이유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보다 정치적인 유불리를 먼저 고려하기 때문이다.
정치 논리를 걷어내야 실체에 다가설 수 있다. 진보와 보수, 어떤 정당이 권력을 잡더라도 국민을 상대로 위험한 도박을 하지 않도록 결계를 쳐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생각에 적당히 눈감는 것은 곪은 상처를 방치한 채 봉합하는 선택이다. 혐오의 그림자가 넘실대는 공간에 다시 치유의 너울이 순환할 때 우리 공동체는 편안함에 이를 수 있다.
류정민 정치부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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