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1조 'K팝 왕국'에는 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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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1조 'K팝 왕국'에는 집이 없다

"한국에서는 공연을 하고 싶어도 공연장이 없어 못 합니다. K팝이 차려놓은 밥상에 다른 나라가 숟가락을 얹어 큰돈을 버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유명 K팝 그룹이 속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의 말이다. 국내 4대 기획사(하이브·SM·JYP·YG)는 해외 투어 수익으로 실적을 끌어올리고 있다. K팝은 연간 1조원 규모의 수익을 내고 외국인 관광객 10명 중 4명이 K콘텐츠로 한국을 찾지만, 정작 한국에는 4만석 이상 상설 공연장이 한 곳도 없다. 잠실주경기장은 공사 중이고 고척돔·서울월드컵경기장은 스포츠 일정 탓에 대관이 어렵다. 결국 2만석 규모 서울 KSPO돔에 대형 공연이 몰린다.


수도권 1만석급 공연장이 몇 곳 있지만, 가수 공연에는 위약금 조건이 까다롭고 접근성도 떨어진다. 이처럼 국내에서 대형 공연을 반복하기 어려운 구조가 해외 투어 비중을 더 크게 만들었다. 블랙핑크·스트레이 키즈·세븐틴 등 월드투어에서 200만명을 모으는 그룹조차 국내 공연 비중은 5%에도 못 미친다.


아시아 아레나 경쟁에서도 한국은 이미 주도권을 잃었다. 일본은 도쿄돔·교세라돔 등 5대 스타디움을 갖추고 있으며, 싱가포르·대만·홍콩은 최근 잇따라 대형 아레나를 개장했다. 각국 정부가 수천억, 수조원을 투입해 공연장을 '산업 인프라'로 육성한 결과다. 공연장이 지역 경제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형 공연장이 서울에 자리 잡지 못한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도심 내 부지 확보가 쉽지 않고, 교통·소음 민원과 예산 논쟁이 반복됐다. 대중음악 인프라를 정책 우선순위로 두지 않아온 관성도 논의를 늦춰왔다. 그 사이 K팝은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북미 주요 K팝 스타디움 공연은 5만~10만석을 거뜬히 채운다.


일부에서는 서울에 공연장을 지을 만한 땅이 없다며 수도권 외곽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대형 공연장은 반드시 서울에 있어야 한다. 세계 주요 공연 도시는 모두 도심 접근성이 뛰어난 곳에 아레나를 두고 있다. 지하철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어야 주변 상권이 살아난다. 황무지에 공연장 하나 짓자며 지역 균형을 논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국회에서는 여전히 논의만 반복 중이다.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검토·용역·타당성 평가만 계속하고 있다. 이제는 서울에 대형 공연장을 짓기 위한 실행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부지를 확보하고, 민간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서둘러 제시해야 한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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