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건강은 입에서 무너진다”… 치아 한 개가 만든 인생의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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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건강은 입에서 무너진다”… 치아 한 개가 만든 인생의 격차
씹기 어려우면 노쇠 위험 2.68배… 연구가 보여준 경고
전문가들은 “노쇠의 시작은 입안에서 비롯된다”며 올바른 구강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노인의 건강을 지키는 핵심 요소로 ‘구강관리’가 집중 조명되고 있다. 치아 한 개를 지키는 일이 노년기 영양·근육·인지 기능까지 좌우한다는 연구와 현장 경험이 잇따르면서다.

22일 임지준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 회장은 최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미디어아카데미 강연에서 “노인의 건강 악화는 뇌나 심장이 아니라 입 안에서 시작된다”며 구강관리를 고령사회 돌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30년 넘게 치매·장애인 구강진료 봉사를 이어온 그는 현재 ‘건강수명 5080 국민운동’을 주도하며 2050년까지 건강수명 80세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임 회장은 “음식을 씹지 못하면 단백질·칼로리 섭취가 줄고, 이는 곧 근육 감소와 체력 저하로 이어진다”며 이를 ‘노쇠의 도미노’라고 표현했다. 국내 연구에서도 씹기 어려움을 겪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노쇠 위험이 2.6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치매·노쇠 예방을 위한 ‘구강 돌봄 체계’ 4대 과제로 ▲ 치매 어르신·가족·지역이 함께 소통하는 돌봄 인프라 구축 ▲ 방문간호·방문요양 체계에 치과 프로그램 포함 ▲ 방문치과·치과위생사 진료 수가 신설 ▲ 전국 요양시설의 정기 구강관리 의무화를 제안했다.


일본은 1989년 ‘8020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노인 구강건강 정책을 선도했다. 당시 노인들의 평균 잔존 치아는 10개도 되지 않았지만, 정부는 구강 건강이 영양·근육량·인지 기능·의료비와 직결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프로젝트로 방문 치과진료 제도가 정착했고, 치매 환자도 연 4회까지 구강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됐다. 2016년 일본은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80세 이상 자연 치아 20개 이상 보유율이 50%를 넘었고, 흡인성 폐렴·의료비 감소 효과도 뚜렷했다.

반면 한국은 방문치과 수가가 없어 요양시설 노인의 치과 접근성이 여전히 낮다. 임 회장은 “반려동물도 방문진료를 받는 시대에,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치과 진료를 제때 받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구강건강의 기본은 ‘횟수보다 꼼꼼함’이라고 강조했다. “치아를 완전히 깨끗하게 닦으면 세균이 다시 나쁜 영향을 주기까지 약 48시간이 걸린다”며 하루 한 번 10분 이상 꼼꼼하게 닦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제안한 올바른 양치법은 ▲ 작은 칫솔 사용▲ 칫솔은 3개월마다 교체 ▲ 전동칫솔은 문지르지 말고 갖다 대기▲ 시린 치아는 불소 치약 사용 ▲ 양치 전 치실 필수 ▲ 주기적인 스케일링으로 치태·치석 제거 등이다.

또한 초고령층 주요 사망 원인인 ‘흡인성 폐렴’ 역시 대부분 구강 세균에서 시작된다. 일본의 한 요양시설에서는 주 1회 구강관리만으로 폐렴 입원일수 1/4 감소, 의료비 4억원 절감 효과가 있었다.

임 회장은 “80세 폐렴 환자의 90%가 흡인성이고, 구강 위생이 나쁘면 폐렴 위험은 1.6배 올라간다”며 “구강관리는 치주질환 예방을 넘어 치매 진행 속도까지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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