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르세라핌이 18~19일 양일간 일본 도쿄돔에 입성해 2025 르세라핌 투어 ‘이지 크레이지 핫’ 앙코르 인 도쿄돔을 개최했다. 이틀 동안 약 8만 명이 도쿄돔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콘서트를 마친 직후엔 내년 1월31일~2월1일 양일간 서울 앙코르 콘서트 개최 소식도 알렸다. 이에 언론미디어도 지난달 24일 발매한 싱글1집 타이틀곡 ‘스파게티’의 글로벌 호조와 엮어 전에 없는 보도 열기를 보여주는 중이다. 텍스트 미디어뿐 아니라 방송 미디어의 보도국 뉴스까지 이례적으로 상황을 떠들썩하게 다루는 흐름이다. 그런데 그 보도 양상을 들여다보면 어딘지 기묘한 부분을 알 수 있다. 주로 ‘스파게티’ 성과를 놓고 상당수 미디어가 ‘르세라핌의 부활’이란 표현을 연이어 사용하고 있단 점이다. 특히 유튜브 채널 등에서 이 ‘부활’ 표현이 잦다. ‘부활’의 주된 근거는 역시 해외 성과, 그중에서도 미국 빌보드 차트 성과로 집중됐다. 그런데 엄밀히 ‘무엇’이 부활일까 말이다.
물론 ‘스파게티’는 글로벌 차원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둔 곡이 맞다. 일단 가장 관심이 쏠리는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11월4일자 빌보드 핫100 차트 50위로 진입한 뒤, 다음 주에도 89위로 2주 연속 차트인에 성공. 기존 자체 기록은 ‘크레이지’ 76위였다. 나아가 역대 K-팝 걸그룹 중 ‘스파게티’보다 높은 핫100 순위를 기록한 팀은 불과 4팀, 블랙핑크(13위), 피프티피프티(17위), 캣츠아이(37위), 뉴진스(48위)뿐이다. 애초 핫100 진입 경험이 있는 걸그룹 자체가 8팀에 불과하다. 그중 2곡 이상 핫100에 진입해 본 팀을 고르라면 또 5팀만 남는데, 르세라핌은 ‘이지’ ‘크레이지’에 이어 ‘스파게티’까지 3곡째다.
그다음쯤 시선을 끄는 영국 오피셜 차트에선 최고 순위 경신(‘크레이지’ 83위→‘스파게티’ 46위)도 경신이지만, 3주 연속 차트인이란 기록까지 세웠다. 11월1일자 차트 46위, 8일자 77위에 이어 14일자에서도 95위를 기록했다. 기존 오피셜 차트 차트인 횟수 기록은 미니4집 ‘크레이지’의 동명 타이틀곡이 세운 2주 연속이었다. 이 밖에도 많다. 예컨대 ‘스파게티’는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위클리 톱 송 글로벌’에서도 4주 연속 차트인에 성공하고 있다. 올해 발매된 K팝 팀 곡 중 블랙핑크와 트와이스에 이어 3번째로 긴 차트인이다.
문제는 이들 글로벌 성과를 놓고 ‘부활’을 얘기한다는 게 상당히 어색한 일이란 점이다. 물론 바로 직전 미니5집 타이틀곡 ‘핫’이 직전 ‘크레이지’보다 무려 33계단 떨어져(109위) 핫100 진입에 실패한 탓이 큰 듯 보이긴 한다. 핫100 차트상으론 99위(이지)→76위(크레이지)→109위(핫)→50위(스파게티) 흐름이 되니 부침을 겪고 일어선 인상이 되는 셈. 그러나 ‘핫’의 경우 같은 주에 강력한 마니아층을 지녀 초반 화력이 엄청난 힙합 아티스트 플레이보이 카티가 새 앨범 ‘뮤직’에 수록된 30곡 전곡을 줄 세우기 하며 모조리 차트인시킨 ‘최악의 대진운’ 상황이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런 직접적 악운 몇몇을 고려하고 보면 미국서 르세라핌은 ‘부활’이 아니라 꾸준한 우상향이었다고도 볼 만하다. 아닌 게 아니라 ‘핫’이 발매된 지난 3월 글로벌 스포티파이에서 르세라핌은 월간 청취자 1526만 명을 기록하며 당시로써 K-팝 걸그룹 월간 청취자 기록을 세운 바 있다.
한편 2025년 미국 유튜브뮤직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K-팝 여자 아이돌 순위에서도 르세라핌의 미국 시장 침투 정도는 잘 드러난다. 걸그룹 중에선 5위에 해당하고, 그중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와 미국 현지화 걸그룹 캣츠아이를 제외하고 보면 트와이스와 블랙핑크에 이어 3위다. 이 순위가 11월 중순 현재까지 집계된 점으로 미뤄 신곡 ‘스파게티’ 영향은 아직 제한적이고 ‘핫’이 상당 부분 재생을 이끌었다고 볼 만하다. 그렇게 르세라핌은 사실 미국에서, 그리고 글로벌 차원에서도 꾸준히 우상향을 그려온 팀이지 ‘부활한 팀’으로 여겨질 이유는 없단 것.
그럼 국내 음원차트 차원에서 ‘부활’이란 인상이 든단 걸까. 따지고 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국내 최대 점유율을 지닌 음원 플랫폼 유튜브뮤직 차트 차원에서도 고점 기준으로 보면 ‘이지’(1위)→‘크레이지’(1위)→‘핫’(5위)→‘스파게티’(4위) 흐름이다. 이 정도 차이는 차트가 어떻게 구성된 시점이냐는 대진운 차원을 생각하면 이렇다 할 변동이라 보기 힘들다. 물론 음원 지속력에선 차이가 있지만, 지속력은 아티스트 스타성이라기보다 곡 자체의 대중적 어필 여부와 관계있다. 스타성, 화제성, 트렌드성과 관련된 부분은 역시 차트 고점이란 폭발력 요소다.
한편, 유튜브뮤직 같은 대중형이라기보다 각 팬덤들이 순위 경쟁을 위해 몰려드는 팬덤형 플랫폼 멜론 차트 차원에서 보면 흐름에 굴곡이 심한 건 맞다. ‘이지’는 톱100 3위, 일간 3위를 기록하다 ‘크레이지’에서 톱100 38위, 일간 34위로 크게 추락한 뒤, 다시 ‘핫’에서 톱100 9위, 일간 10위로 반등하고 이제 ‘스파게티’에서 톱100 3위, 일간 5위로 돌아온다. 시기상 ‘민희진-하이브 간 어도어 경영권 분쟁’과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 가창력 관련 논란’에 휩쓸리면서 이 같은 이슈들에 민감한 K-팝 헤비 리스너들로부터 도외시됐다고 볼 만하다. 특히 전자의 분쟁에 엉뚱하게 휩쓸리면서 후자 쪽 논란이 과도하게 장기화한 측면도 엿보인다.
그러나 멜론 차트를 놓고 봐서도 르세라핌의 ‘부활’은 사실 지난 3월 ‘핫’ 시점이다. 톱100 38위에서 9위로 껑충 뛰었으니 이제 지난 1년간 휩싸였던 네거티브 요소들이 걷히고 국내에서도 뚜렷한 반등이 확인되던 시점이라 볼 만하다. 그런 데도 왜 ‘핫’이 아니라 ‘스파게티’를 중심으로 ‘부활’이란 얘기가 계속 반복되는 걸까.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