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멍 배우멍, 일하멍 쉬멍, 검질 매멍… 탐나는 워케이션 [지방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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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멍 배우멍, 일하멍 쉬멍, 검질 매멍… 탐나는 워케이션 [지방기획]
글로벌 ‘디지털노마드’ 성지 제주 민·관 협력 2022년부터 시범사업 체류형 생활인구 10만명 유치 땐 생산유발 862억·취업 927명 효과 국내외 22개 대학 ‘런케이션’ 협약 지방 소멸·청년 유출 새 대안 주목 농업도 접목… 일손 부족해소 ‘윈윈’
‘제주의 광안리’로 불리는 제주시 이호테우해수욕장 인근의 한 펜션은 최근 낡은 객실을 리모델링하느라 분주하다. 워케이션(Workation: 휴가지 원격 근무) 오피스로 변신하기 위해서다. 업주는 “제주도 숙박업소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영세한 숙박업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며 “업종 변화를 고민하다가 펜션 2개층 가운데 위층을 워케이션 오피스로 꾸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항도 차량으로 10분 거리인 데다 해수욕장과 맨발걷기(어싱) 백사장을 끼고 있고 한 건물에 숙박, 음식, 카페를 갖추고 있어 워케이션 장소로 적격이라고 판단했다”며 “행정기관 도움 없이 은행에서 시설 개선 자금을 대출받아 오피스에 맞는 스마트 공간으로 꾸미고 있다”고 전했다.

‘워케이션 성지’라 불리는 제주의 경쟁력은 행정주도형 모델이 아닌 민간 중심의 자발적 생태계 조성 구조로 오피스 다수가 기업·스타트업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설립하는 특징을 갖는다. 여기에 개인 사업자도 속속 민간 파트너사로 동참하고 있다.
제주 제주시 구좌읍 워케이션 공유 오피스 세화질그랭이센터. 제주도 제공 30일 제주도에 따르면 현재 공공형 오피스 3곳과 민간형 오피스 15곳 등 제주에 워케이션으로 활용하고 있는 공간은 18곳이다. 지난달 28일 제주시 동쪽 에메랄드빛 바다로 유명한 함덕해수욕장 인근에는 공공형 오피스 3호점이 문을 열었다. ‘제주워케이션 함덕오피스’(아일랜드워크랩 함덕)는 국내외 기업과 원격근무 인재가 자유롭게 일하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함덕 해변과 인접한 최적의 입지를 갖춰 일과 생활의 조화를 이루는 제주형 워케이션 모델의 핵심 공간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제주도는 공공·민간이 협력하는 제주형 워케이션 정책을 추진하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2022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공공형 오피스 제주시·서귀포점 확충, 민간파트너사 네트워크 구축, 워케이션 바우처 사업, 기업 유치 프로그램 등을 단계적으로 운영해 왔다.

◆생활인구 약 10만명… 글로벌 워케이션 허브로

이제 제주워케이션은 단순한 체류형 관광에서 벗어나 기업유치와 인구유입, 지역경제 선순환을 연계한 전략적 체류 정책으로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기준 누적 9만명이 넘는 워케이션 생활인구를 유치했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난 4∼5월 설문조사한 결과 참여자의 평균 체류기간은 4박5일이고, 1인당 평균 지출액은 64만원(항공료 제외)으로 조사됐다. 제주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10만명이 제주 워케이션에 참여할 경우 △생산유발효과 862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 306억원 △취업유발효과 927명으로 추산된다.

제주도는 2024년과 2025년 2년 연속 ‘국가서비스대상’(워케이션 부문)을 수상했다. 아울러 이재명정부 광역과제로 ‘글로벌 워케이션 허브 조성’이 채택되는 등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물리적인 사무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노트북이나 디지털 장비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고 부른다. ‘디지털’에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를 붙인 말이다.

제주도는 제주도만의 무사증 입국 제도를 활용해 워케이션을 글로벌 수준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최근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대만 국가발전위원회(NDC) 간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국제협력 기반을 마련했다. 이달 유럽권 디지털 노마드 대상 시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직항노선 국가를 중심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해 해외 디지털노마드 유치를 적극 추진하고, 국내외 기업의 장·단기 체류형 업무공간 수요를 반영한 ‘제주형 분산오피스 모델’을 고도화할 방침이다. 특히 워케이션 참여자의 소비활동을 지역상권과 연계하고, 지역문화 체험 프로그램과 마을 기반 체류형 콘텐츠를 확대하는 등 지역과 상생하는 체류형 경제 활성화 정책을 본격 추진한다.

제주 워케이션이 전국에서 모범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유치 인센티브를 꼽고 있다. 민간형 워케이션 바우처는 1인당 30만원 한도 내에서 항공권, 숙박비, 여가비를 실비로 지급한다. 신청자는 본인이 희망하는 일정에 맞춰 자율적으로 제주를 방문하고 체류할 수 있어서 직장인·프리랜서·1인 기업인 등 다양한 수요층이 참여하고 있다. 공공형 워케이션 바우처는 기업이나 기관을 대상으로 제주에 임시 또는 분산 오피스를 두고 일할 수 있도록 공간을 무료로 제공한다. 3일 이상 사용하면 지역화폐인 ‘탐나는전’ 5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민간 파트너사 관광기금·융자지원 확대, 로컬 콘텐츠 강화, 숙박률 대비 지역 상권 활성화 등은 풀어야 할 과제다. 김미영 제주도 경제활력국장은 “제주워케이션은 단순한 업무 공간 제공을 넘어 지역과 기업이 상생하는 혁신적 정책 모델”이라며 “제주가 글로벌 체류정책의 선도 사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속 가능한 정책 기반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025 글로벌 런케이션 브랜딩 캠프. 제주도 제공 ◆“제주서 배우고 살아본다”… 런케이션 주목

제주는 런케이션(Learncation: 배움 여행) 최적지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제주도가 국내 16개 대학·해외 6개 대학과 런케이션 업무협약을 체결한 이후 참여 학생 수가 2000명을 넘어섰다. 지방 소멸과 청년 유출이라는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학점과 체험을 연계한 체류형 교육모델이 대학 혁신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희대가 운영 중인 사회혁신형 런케이션 프로그램은 강의실을 벗어난 대학생들이 제주 마을로 들어가 주민과 함께 신메뉴를 개발하고 축제를 기획하며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제주도와 런케이션 협약을 체결한 대학 재학생 또는 제주대에서 계절학기를 수강한 도외 대학 소속 참여자는 최대 3박까지(1박당 최대 5만원) 총 15만원의 숙박비를 사후 정산 방식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제주도는 2025년부터 5년간 총 2500억원을 투입하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의 하나로 ‘글로벌 K교육·연구 런케이션 플랫폼 조성사업’을 대표과제로 추진 중이다.

도내 3개 대학(제주대, 제주관광대, 제주한라대)이 주도한 런케이션 프로그램은 28건이 운영됐으며, 국내외 122개 기관과 1000여명이 참여했다. 특히 평균 체류기간이 5.2일로 내국인 관광객 평균(3박4일)보다 길게 나타나 지역 체류형 관광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제주도는 일과 휴가를 결합한 워케이션 개념을 농업 분야에 접목한 ‘제주 탐나는 농케이션(農cation)’ 시범사업도 벌이고 있다. 농촌 일손 부족 문제 해소와 도시민 체류형 관광 활성화를 함께 추진하는 상생형 프로그램으로 기획했다. 참가자들에게는 목욕비, 식비 등을 지역화폐 ‘탐나는전’으로 지급한다. 도내 전체 숙박시설의 80%를 차지하는 농어촌민박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런케이션, 농케이션, 카름스테이(마을여행) 등 새로운 관광 트렌드와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한다. 안전인증 민박(221개소)을 활용한 런케이션 운영 모델을 마련한다.
◆ 오영훈 제주도지사 “농어촌민박, 디지털 전환 제주형 ‘런케이션’에 활용”

“제주 워케이션이 2025년 국가서비스대상 워케이션 부문에서 2년 연속 수상하며 성공적인 정책모델로 인정받았습니다. 수상을 계기로 글로벌 워케이션 허브 제주 실현을 위한 중장기 전략 실행에 박차를 가하겠습니다. ”

오영훈(사진) 제주도지사는 30일 “본격적으로 워케이션 사업에 뛰어든 지 2~3년 만에 생활인구 10만명 목표에 근접한 것은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체류일수 확대 전략을 제대로 추진해온 결과”라고 강조했다.

오 지사는 “수요 기반으로 설계된 개별형 바우처와 기업 간 네트워킹 중심 프로그램이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전국 처음으로 도입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인센티브 제도가 기업의 지역사회 기여를 제도화한 핵심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수의 기업이 제주 체류 중 봉사활동과 쓰담달리기(플로깅) 등 ESG 실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인센티브 제도가 기업의 사회적 가치 실현과 공공성 확보 측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주도는 지난달 28일 제주시 조천읍 함덕해수욕장 인근에 세 번째 공공형 오피스인 함덕오피스(아일랜드워크랩 함덕)를 열었다.

오 지사는 “워케이션을 기반으로 런케이션(학습+휴식)과 농케이션(농촌+휴식) 등 새로운 체류형 프로그램이 확장되고, 지역경제에도 실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워케이션이 지역경제 선순환에 기여하도록 제도 개선과 지원 확대를 검토하고, 민간 워케이션 시설과 공공형 오피스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민간 파트너사 등 현장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런케이션은 제주의 새로운 교육 브랜드로, 자연 속에서 배움과 휴식이 공존하는 세계적 교육도시 모델”이라며 “상표권을 출원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다양한 인증 프로그램과 콘텐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지사는 “이미 국내 16개, 해외 6개 대학과 런케이션 협약을 체결했고,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동안 관련 의제가 채택돼 논의된 만큼 체류형 교육을 확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만명 이상이 런케이션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대학캠퍼스 기숙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농어촌 민박의 디지털 전환을 통해 런케이션에 적극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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