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요건을 현행 주택가격의 90%에서 70%로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보증 강화안은 제도적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이지만, 시장 현실과 괴리를 줄이지 못하면 임대인·임차인 모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게티이미지 빌라 등 ‘비(非)아파트’ 전세 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오는 4분기 만기를 맞는 연립·다세대 전세 계약 10건 중 8건 이상이 보증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10건 중 8건, 보증 가입 불가…“기존 보증금으론 기준 못 맞춰”
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올 4분기 만기 예정인 전국 연립·다세대 전세 계약 2만4191건 가운데 78.1%(1만8889건)가 보증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인천이 93.9%로 가장 높았다. 경기도 80.2%, 서울은 75.2%였다.
현재는 보증금이 주택가격의 90% 이내일 때 가입이 가능하다. 빌라의 경우 주택가격을 통상 공시가격의 140%로 인정한다. 사실상 공시가격의 126%까지는 가입이 허용된다.
기준이 70%로 강화되면 허용 범위가 공시가격의 98%로 낮아져 상당수 계약이 자동 탈락하게 된다.
◆임대인·임차인 모두 압박…“보증금 수천만원 낮춰야”
보증 가입이 불가능한 계약은 평균 3533만원의 보증금을 낮춰야 새 기준에 부합할 것으로 추산된다.
임대인이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준 뒤 신규 임차인과 계약을 맺으려면 수천만원의 현금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금 유동성이 부족한 임대인은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해 ‘역전세 대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전세 사기를 막고 제도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보증 가입 조건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현장에서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이 되레 시장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반발이 크다.
전세보증은 사실상 전세 계약의 필수 조건이 된 상황에서, 가입 제한은 곧 거래 위축과 시장 경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제도 안정성 vs 시장 충격”…전문가 진단은?
한 전문가는 “보증 강화는 정책적 안정성을 위한 조치지만, 빌라 전세 시장은 이미 유동성이 취약하다”며 “갑작스러운 강화는 ‘역전세 리스크’를 폭발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차인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가 오히려 임차인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며 “보증금 반환 불능 → 신규 계약 불가 → 시장 유동성 악화라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세 시장이 ‘안정성 강화’, ‘서민 보호’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갈 것인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게티이미지 그러면서 “정책은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며 “단계적 적용이나 기존 계약 유예 등 완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아파트 시장은 공시가격과 실거래가 괴리, 감정평가 한계 등 구조적 문제가 있다”며 “보증 요건 강화보다 공시가격 산정 방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전세보증은 단순 금융상품이 아닌 사회적 안전망”이라며 “제도 남용을 막되 시장 전체를 위축시키지 않는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향후 전망은?…“충격 완화 장치 마련 절실해”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보증 강화안은 제도적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이다. 시장 현실과 괴리를 줄이지 못하면 임대인·임차인 모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단계적 적용, 보증금 조정 가이드라인, 공시가격 현실화 등 완충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이번 논의는 단순히 보증 요건 강화 문제가 아닌 한국 전세 시장이 ‘안정성 강화’, ‘서민 보호’라는 2가지 목표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갈 것인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