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 공백 1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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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 대사 공백 1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7월부터 2021년 1월까지 3년 가까이 주한 미국 대사로 일한 해리 해리스(69)는 원래 호주 대사로 내정된 인물이었다. 그런데 2018년 4월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갑자기 해리스의 임지를 호주에서 한국으로 바꿨다. 그가 트럼프한테 무슨 언질을 받았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군인 출신으로 미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해군 대장)을 지낸 강직한 성품의 해리스를 주한 대사로 발탁한 트럼프의 의도는 분명해 보였다.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큰 폭으로 인상하려는 목표 달성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주한 미국 대사관 전경. 한국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주한 미 대사 직위는 2025년 1월 7일 이후 1년 가까이 공석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우여곡절 끝에 주한 대사가 된 해리스는 진보 성향의 문재인정부와 사사건건 다퉜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놓고 우리 외교·안보 당국과 말 그대로 격렬히 대립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시민단체는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로부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총독을 보는 것 같다’라는 원색적 비난까지 받아야 했다. 해리스가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이란 점까지 들어 인신 공격을 가한 것이다. 훗날 해리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사로서 개인 입장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입장을 전달하는 게 나의 임무”라는 말로 억울한 심경을 드러냈다.

민주당 출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2021년 1월 해리스는 주한 대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향했다. 그 뒤 약 1년 6개월 동안 주한 미국 대사 자리는 공석으로 남았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인 2022년 7월에야 필립 골드버그(69) 대사가 임명돼 한국에 부임했다. 2년 6개월가량의 임기 내내 골드버그는 한·미 동맹 강화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2011년 이후 한국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은 없었다. 그런데 골드버그는 2023년이 한·미 동맹 출범 70주년이란 점에 착안해 이를 강력히 추진했고 결국 멋지게 성사시켰다. 하지만 2024년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미 백악관과 국무부로부터 엄청난 질책을 받고 올해 1월 쓸쓸하게 한국을 떠나야 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월 7일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가 한국 근무를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에게 작별의 뜻으로 손을 흔들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 1월 20일 대통령으로서 두 번?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는 아직도 주한 대사를 임명하지 않고 있다. 오는 2026년 1월 7일이면 주한 미국 대사 공백 사태 1년이 된다. 한국 외교에서 한·미 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우려를 금하기 어렵다. 이 와중에 지난 19일 미 언론 매체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가 국무부 소속 외교관들을 겨냥한 ‘군기 잡기’를 본격화하고 나선 모양이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 때 정치적 이유로 임명된 특임 대사는 물론 직업 외교관 출신 대사까지 마구 본국으로 불러들여 해임을 종용한다고 한다. 정권 교체에 따른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겠으나 자칫 한·미 동맹에 금이 갈까봐 걱정이다. 주한 미국 대사 공백 사태가 부디 1년을 넘기지 않길 소망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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