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3865명(정수 기준)으로 구성된 전국 243개 지방의회는 올해 30주년을 맞은 민선 지방자치의 한 축을 이룬다. 지방의회는 주민 신뢰 제고 등 과제도 적지 않지만 그간 주민 대표 기관으로서 지방자치, 풀뿌리민주주의 정착과 발전에 기여해 왔다. 지역 갈등과 현안을 해결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21일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대한민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와 공동 개최한 ‘제7회 지방의회 우수사례 경진 대회’에선 다양하고 참신한 사례가 봇물을 이뤘다. ‘우수 조례’, ‘의정 활동’, ‘주민 참여’ 3개 분야별 공모로 우수사례 101건이 접수됐다. 이 중 전문가 심사 등을 거쳐 본선에 오른 12개 지방의회에 대상(1점)과 최우수상(2점), 우수상(3점), 장려상(6점)이 시상됐다.
‘제7회 지방의회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수상한 지방의회 관계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행정안전부 제공 ◆지역 맞춤형 조례 제정 눈길 29일 행안부에 따르면 올해 대상은 주민 발의로 전국 첫 ‘하청 노동자 지원 조례’를 만든 울산 동구의회에 돌아갔다. HD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엔 올해 1월 기준 사내 하청 노동자가 2만5000명에 달한다. 이에 주민들이 하청 노동자 권익 보호 및 증진을 위해 2022년 조례 제정을 추진했다.
주민조례발안법에 따라 18세 이상 주민은 해당 지방의회에 조례 제정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인구별 일정 비율 이상의 연대서명을 받아야 한다. 기준치의 2배가 넘는 울산 동구 주민 4100여명이 뜻을 모아 2023년 하청 노동자 지원 조례가 전국 최초로 제정·시행됐다. 이 조례엔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 등 하청 노동자의 권리, 하청 노동자 지원 계획 수립·시행, 실태 조사 등 구청장의 책무가 규정됐다.
울산 동구의회의 성과는 단순히 조례 제정에 그치지 않았다. 조례에 따라 ‘하청 노동자 지원 위원회’가 가동됐다. 하청 노동자의 안정적 생활을 위한 ‘노동복지기금’도 조성됐다. 이 기금은 하청 노동자를 비롯한 관내 노동자에게 긴급 생활 안정 자금과 전세 자금 대출 이자를 지원한다. 또 지난해엔 노동자지원센터와 근골격 건강지원센터가 문을 열었다.
최우수상은 ‘지역 산업 위기 대응 체계 구축 및 운영 조례’를 통해 지역 위기를 선제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대응 시스템을 만든 광주광역시의회가 받았다. 대유위니아그룹 위기 등으로 지역경제에 적신호가 켜지자 시의회는 지난해 조례를 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 이 조례엔 시장이 지역경제 상황 모니터링 체계, 산업 위기 단계별 대응 매뉴얼·시책 등을 포함한 ‘지역 산업 위기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례 시행 이후, 올해 8월 광주 광산구가 고용노동부의 ‘고용 위기 선제 대응 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성과로 이어졌다.
세종시의회는 2023년 만든 ‘공동주택 화재 예방과 안전 문화 활동 지원 조례’, 충남도의회는 올해 5월 만든 ‘분산에너지 활성화 및 지원 조례’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세종시의회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비중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 특성을 조례에 반영했다. 세종대왕 때인 1426년 창설된 우리나라 첫 소방 기관인 금화도감에 착안해 세종소방본부에 공동주택 화재 예방 순찰대인 ‘금화순찰대’도 가동했다. 충남도의회는 전력 생산량이 전국 1위이나 53% 정도를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지역 실정을 감안해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지역에서 쓰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이른바 분산 에너지 생태계 조성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참여 기업 지원 조례’를 만든 전북도의회, 올해 4월 ‘해양 생태계 보호를 위한 친환경 어구 사용 촉진 조례’를 만든 경북도의회는 장려상을 받았다. 전북도의회의 조례는 경기도, 부산, 경기 광명·파주 등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경북도의회는 연간 해양 쓰레기의 26%를 차지하는 폐어구 문제 해결을 위해 생분해성 어구 개발 및 사용 확대 사업 지원 등을 조례로 못 박았다.
◆주민 참여·의정 활동 ‘다채’ 지방의회들의 주민 참여 확대를 위한 노력과 다양한 의정활동도 두드러졌다. 경남 진주시의회는 시내버스 준공영제 운영을 위한 주민 청구 조례안이 경제성 등을 이유로 지난해 부결돼 지역사회 갈등이 극에 달하자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다. 시민단체와 6차례 간담회를 가지는 등 지난한 노력 끝에 절충형인 ‘시내버스 총액표준운송원가제 운영 조례’를 제정해 갈등을 풀어 최우수상을 받았다.
우수상을 받은 인천시의회는 ‘주민 조례 발안 제도 활성화 사업’을 추진했다. 올해 2월 활성화 계획을 수립하고, 시민참여 조례입법 아카데미를 자치입법 참여지원센터로 확대 개편해 운영 중이다. 장려상을 받은 지방의회 중엔 저마다 혁신 모델을 마련한 곳이 적지 않다. 서울시의회는 EBS와 협업해 ‘찾아가는 퀴즈쇼’로 학교별 수업을 진행하고 영상은 유튜브 채널에 공개하는 등 ‘청소년 대상 지방의회 교육 및 홍보 혁신 모델’을 구축했다.
충북도의회는 조례 선별 평가 도입, 평가 기준표 개선 등 ‘입법 평가 표준 모델’로 조례 정비 체계를 마련했다. 경기 부천시의회는 ‘정책 지원관의 의정 지원 3단계 혁신 모델’을 만들었다. 정책 지원관 사무 처리 규정과 업무 매뉴얼을 만들고, 역량 강화 교육과 현장 견학, 정책 연구·분석을 거쳐 연구 성과를 공유하게 했다. 이를 통해 의정 지원 전문성이 한층 향상됐다.
광주 광산구의회는 지난해부터 청소년 정치교육의 산실인 ‘참당당 청소년 정치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지방자치 이해 등 이론부터 토론, 의원 역할 체험, 정책 의제화까지 커리큘럼을 촘촘히 짜 청소년 대상 지방자치 연속형 교육 모델을 제시했다.
김민재 행안부 차관은 “‘주민 주권 시대’ 구현을 위해 주민 대의기관인 지방의회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방의회 우수사례 경진 대회를 통해 지역 발전을 이끌고 주민 삶의 질을 높인 지방의회의 탁월한 성과가 국민께 널리 알려지고 타 지역으로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행안부도 지방의회가 지역 최일선에서 주민과 더 많이 소통하고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풀뿌리 민주주의 발굴…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전국 지방의회의 다양한 우수사례를 발굴하는 ‘지방의회 우수사례 경진 대회’는 올해로 7회째를 맞았다. 지방의회들이 풀뿌리민주주의에 기여한 사례를 서로 공유해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고 있다.
2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방의회 우수사례 경진 대회는 행안부가 2019년 부산에서 처음 개최한 이래 매년 10∼12월 중 열리고 있다. 행안부는 “지역 특수성과 다양한 행정 수요에 적극 대응해 지역 발전과 주민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한 우수사례를 발굴하고 공유해, 지방의회 역량 강화와 학습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며 “또 지방의회에 대한 주민의 신뢰와 긍정적 인식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17개 광역의회, 226개 기초의회 등 전국 243개 지방의회가 대상으로, 분야는 ‘우수 조례’와 ‘의정 활동’, ‘주민 참여’ 세 가지다.
우수 조례는 지역 특수성을 반영해 새로운 행정 수요와 주민 요구에 적극 대응한 입법 사례를 뜻한다.
의정 활동 분야는 의회 혁신과 입법 평가, 정책·입법 연구로 나뉜다. 의회 혁신은 의회 책임성과 청렴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 의회 제도 또는 공무 국외 출장 개선, 2022년 의회 인사권 독립 이후 집행부와 관계 개선을 위한 변화 노력 등 수범 사례다. 입법 평가는 의회 주도로 조례 실효성과 적합성 등을 점검하기 위한 입법 평가 제도 도입 및 운영 사례가 해당된다.
주민 참여 분야는 주민 조례 청구와 주민 소통으로 구성된다. 주민 조례 청구 제도 활성화와 주민 참여 확대, 토론회 등 주민과 소통 창구 마련, 주민의 의정 활동 참여 유도와 기회 제공을 통해 지역 현안을 해결한 사례가 해당한다.
올해 경진 대회에선 2022년 1월 개정 지방자치법 시행 이후 올해 7월까지의 실적을 폭넓게 접수했다. 행안부는 시·도별 3건 이상 제출을 권고해 필요성과 창의성, 전문성, 효과성, 참여·협력을 기준으로 심사했다. 대상 100만원, 최우수상 70만원, 우수상 40만원, 장려상 20만원 상당의 부상이 기관·개인별 행안부 장관 표창과 함께 주어진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