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차기 원내 사령탑 자리를 둘러싼 물밑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공천헌금 파문이 확산하는 가운데 원내대표로서 혼란을 수습하고 지방선거 승리를 이끌 경우 정치적 중량감을 키울 수 있어서다. 잔여 임기는 4개월로 짧지만 ‘구원투수’로 자리매김할 경우 1년 연임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에 당내 3선 이상 중진들은 ‘위기관리형’, ‘당·청(당·청와대) 조율형’ 등 각기 다른 전략을 만지작거리며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지난 30일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가 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원내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뉴시스 각종 비위 의혹에 휩싸인 김병기 전 원내대표의 사퇴로 치러지는 이번 보궐선거전에서 첫 포문은 3선의 진성준 의원이 열었다. 진 의원은 당내 위기 상황인 만큼 ‘관리형 원내대표’를 자처하며 ‘임기 연장 없이 4개월만 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진 의원은 3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내대표가 중도에 사퇴한 엄중한 상황을 수습하고 당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일이 참으로 시급하다”며 “당의 도덕적·윤리적 원칙을 똑바로 세우고 흔들림 없이 견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진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정책위의장을 지낸 당내 대표적 정책통으로, 정부의 감세 기조에 맞서 금투세 폐지, 대주주 기준 완화 등에 반대하며 이른바 ‘레드팀’ 역할을 해왔다. 당초 차기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지는 않았던 진 의원이 임기 연장 가능성을 차단하고 ‘관리형’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원내대표 선거를 준비해 온 다른 후보들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박정·백혜련·한병도 의원(이상 3선)은 애초 5월로 예정된 정식 원내대표 선거를 염두에 두고 의원들과 물밑 접촉을 이어왔다. 여기에 2025년 6월 원내대표 선거전에 출마했던 서영교 의원과 당시 출마를 고심하다 한발 물러섰던 조승래 사무총장, ‘1당원 1표제’에 공개 반대 입장을 밝혔던 이언주 최고위원 등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당원주권과 사법개혁 등 강경한 개혁 노선을 앞세워 온 정청래 대표와 청와대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왔던 김 전 원내대표가 사퇴하면서, ‘당·청 조율’을 내세운 후보군이 속속 등장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박정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대통령이 국정전환과 통합의 리더십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과 보폭을 맞춰 적극 도와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진선미 선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보궐선거관리위원회 진선미 위원장이 31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선관위 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원내대표 후보등록은 1월5일이고 선거는 11일 치러진다. 연합뉴스 이번 보궐에서 당선된 원내대표의 임기를 1년으로 보장해 주자는 주장도 나온다. 맹성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제한된 임기 아래에서는 원내 협상 전략을 꾸리고, 당정청 협력 구조를 안정시키는 등 역할을 하는 데 분명히 한계가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맹 의원은 지난 8월 전당대회 당시 박정 의원과 함께 박찬대 의원을 지원했다. 일각에서는 후보 간 교통정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CBS라디오에서 “‘4개월만 하고 연임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선명한 전략을 사용하는 후보를 밀어주고 다음에 정식 원내대표 선거에 나가서 1년 하겠다’는 수준으로 정리되지 않을까”라고 내다봤다.
당내에서 추대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현재로선 경선에 무게가 실린다. 추대하기 위해선 후보를 한 명으로 좁혀야 하는데, 출마자가 많아 경선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함께 4선 이상 중진이 구원투수로 나설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4선 이상 중진은 경선을 해야 한다면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내대표 후보등록은 1월5일까지다. 11일 치러지는 원내대표 선거는 권리당원 투표 20%, 국회의원 투표 80%가 반영된다. 권리당원 투표는 10∼11일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결선투표 가능성을 감안해 후보자 모두에 대한 선호도 순위를 적는 방식이다. 의원 투표를 진행한 뒤 의원총회에서 권리당원 투표와 의원 투표 결과를 합산해 결과를 발표한다.
김나현·조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