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발표 예정이었던 정부의 ‘제5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2026∼2030년)이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이재명정부의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저고위와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저고위는 올해 초부터 관계부처와 제5차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 수립을 준비했다. 기본계획은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근거해 5년 단위로 발표하게 돼 있다. 직전 제4차 계획(2021∼2025년)이 2020년 발표돼 2025년까지 시행됐다. 저고위는 연초부터 5차 계획 수립을 위해 범부처 회의를 열었으나 정권 교체 뒤 공식 회의는 부재했다. 저고위 관계자는 “부처 협의는 계속하고 있으나 정부의 국정과제를 반영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해명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연합뉴스 저고위 안팎에서는 기본계획이 밀리면서 세부 정책도 연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고위 상임위원을 지낸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본계획이 만들어져야 연도별 세부 시행 계획도 세울 수 있지 않겠냐”며 “부처뿐 아니라 지자체 예산 수립 등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차원에서 인구 정책에 대한 시급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청와대 인구정책 비서관 자리가 수개월째 공석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인구정책 비서관은 인공지능(AI)미래기획수석실 산하로 이번 정부에서 재편됐는데 직제상 ‘AI’와 ‘인구’가 이질적이라는 문제도 제기됐다.
비서관 공석은 저고위의 기본계획을 챙길 사람이 없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부처 간 이견이 생겼을 때 이를 조율하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기본계획을 저고위가 만든다고 해도 심의가 제대로 되겠냐는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저고위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위원장은 대통령인데, 기본계획을 심의하려면 통상 저고위 회의가 열려야 한다. 홍 교수는 “인구정책 비서관도 없는 상태에서 위원회 회의를 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고위 자체가 방치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저고위는 최근 대통령실 생중계 업무보고에서도 배제됐다. 같은 대통령 직속 위원회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업무보고 때 배석해 보고를 진행했다. 이날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은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
‘수장 부재’로 기본계획 발표는 우선순위에서 더 밀릴 가능성이 커졌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연구위원은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이제 막 반등했는데 정부 차원에서 저출생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했다. 국내 출생아 수는 2024년 7월부터 16개월 연속 증가하고 있다. 다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여전히 최하위 수준이다.
복지부는 저고위를 인구전략위원회(가칭)로 개편할 방침이다. 기획·조정 권한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회와 상의해 이르면 1월 중 ‘인구전략기본법’을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