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숙의이매진] 모든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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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의이매진] 모든 첫 번째
어렸을 때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는 쉬는 시간이면 신문을 꼼꼼히 읽었다. 한번은 아버지와 같이 기차를 타고 아버지 고향의 친척 집 행사에 간 적이 있다. 창가 자리에 앉은 아버지는 그때도 뭔가를 읽다가 작은 수첩에 메모를 했다. 깨어 있을 때는 그저 막걸리를 마시거나 힘든 일을 하는 게 다였던 단순한 캐릭터가 아버지였는데 오히려 뭔가를 쓰던 순간의 아버지 얼굴이 더 많이 떠오른다. 그날 기차에서 아버지의 수첩을 잠깐 열어봤던 기억이 난다. 거기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단어들이 띄엄띄엄 적혀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습관이 나한테도 이어졌는지 새해가 되면 문구점으로 가 일기장을 산다. 올해도 유선이 나을까, 무선이 나을까 매해 하는 똑같은 고민을 하다가 조금 두꺼운 재질의 미색 노트를 선택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도 있을 듯해 묵직한 연필선이 잘 배일 그런 화집 같은 일기장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또 언젠가 친한 언니와 같이 산 블랙윙 연필도 두 자루 있고, 이제 글쓰기 연장은 모두 다 갖춰진 셈이다.

새벽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책상 앞에 앉아 뭘 해야 할지 모를 때,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뭔가 잡념에 시달릴 때, 뭔가 생각만큼 잘 써지지 않을 때 아무 챕터나 펼쳐서 읽는 책이 있다. 글쓰기 강사이자 작가인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연필이나 노트, 타자기 같은 글쓰기의 연장을 통해 글쓰기를 시작한 경험을 말해준다. 글은 내면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도구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는 것이다.

뭐, 어쨌든 이 모든 게 새해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새해 첫 달이고, 올해 첫 글을 쓸 시간이 되었다는 것 아닐까.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라는 필자의 말은 정말이지 멋지다.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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