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여의도 사람들은 왜 문화의 언어를 배우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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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뷰] 여의도 사람들은 왜 문화의 언어를 배우지 못하나
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김두일 정치사회부 선임기자
 
 오늘 골든글로브에서 K팝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의 노래가 오리지널 주제가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한국 문화가 더 이상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 서사의 일부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문화가 중심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늘 조용하지만, 그 파급은 오래 간다.
 정치는 이 변화를 얼마나 따라오고 있을까. 아니, 따라오고 있기는 한가. 문화는 본래 감성의 영역이지만, 정책으로 번역되는 순간 그것은 언어의 문제가 된다. 세계는 이미 문화라는 언어로 경쟁하고 있는데, 우리 정치는 여전히 과거의 문법으로 말하고 있다. 문화는 지원 대상이고, 관광은 이벤트이며, 도시는 배경 정도로 취급된다. 이 사고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정치는 언제나 한 박자 늦을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책은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그는 문화를 '좋은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 문화가 어떻게 공간이 되고, 동선이 되며, 체류 시간이 되고, 다시 산업으로 환류되는 지를 묻는다. 문화는 감상이 아니라 설계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강을 단순한 풍경에서 관광 인프라로 재정의하고, 도심의 역사와 디자인을 분절된 자산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로 엮으려는 시도는 그래서 나온다. 걷는 도시, 정원도시, 수변 공간의 재구성은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체류형 관광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문화정책은 이 단계에서 관광산업으로 번역된다. 보고 지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머무르고 소비하고 다시 찾는 도시로의 전환이다.  이런 접근은 구호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문화의 언어를 일상처럼 다루는 사람에게서만 가능하다.
 오세훈은 고집이 센 정치인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련된 정치인이다. 그 세련미는 연출된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체화된 언어에 가깝다. 가까이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안다. 그의 말과 선택에는 과도한 과시가 없고, 설명보다 구조가 앞선다. 이런 태도는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문화는 혼자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며 익히는 언어다. 영문학이라는 깊은 텍스트의 세계를 통과한 동반자와의 생활은, 정치인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다듬는다. 세계를 바라보는 감각, 표현을 절제하는 태도, 맥락을 중시하는 습관은 정책에도 스며든다. 그래서 그의 문화정책은 감정적이지 않고, 관광정책은 과장되지 않는다.
 반대로 어떤 정치는 여전히 문화 앞에서 서성거린다. 문화는 쉽게 동원의 수단이 되고, 관광은 곧장 비용의 문제로 축소된다. 세계가 문화로 경쟁하는 시대에, 이 정치는 아직도 '왜 필요한가'를 묻고 있다. 이미 늦은 질문이다.   문화의 언어를 배우지 못한 정치와 그 언어로 도시를 설계하는 정치의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오늘의 골든글로브는 그 간극을 조용히 보여줬다. 한국 문화는 세계의 무대에 올랐고, 정치 역시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과거의 문법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다음 시대의 언어를 배울 것인가. 준비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이제 숨길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서울이 단순히 K컬처가 만들어지는 '배경 도시'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은 콘텐츠가 태어나고, 확장되고, 다시 세계로 송출되는 플랫폼 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음악과 영화, 패션과 디자인, 일상과 도시 공간이 서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춘 도시는 많지 않다. 오세훈의 문화정책과 관광정책이 만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문화는 서울에서 소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광을 통해 체험으로 확장되고, 산업으로 환류되며, 다시 새로운 콘텐츠를 낳는다.  플랫폼 도시는 유행을 쫓지 않는다. 대신 흐름을 만든다. 이벤트를 반복하지 않고, 동선을 설계한다. 서울이 세계 관광도시 경쟁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볼거리'가 아니라 '머무를 이유'를 제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의 언어를 이해하는 정치, 도시를 하나의 텍스트처럼 읽는 리더십 아래서만 가능한 일이다.  오늘 K컬처가 세계의 중심에 선 장면은, 서울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고편에 가깝다. 그리고 그 방향은, 이미 설계되어 있다.
 
아주경제=김두일 선임기자 dikim@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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