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이상배 전문기자] 세계지도를 떠올릴 때 대부분 일반인은 메르카토르 도법에 익숙하다. 이 지도에서는 적도 부근이 중심이 되어 극지방은 잘 나타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 세계 최대의 섬인 그린란드는 심리적·시각적으로 늘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빙하와 피요르드, 에스키모와 개 썰매, 고래와 얼음 이글루 정도로 기억되는, 현실보다는 상상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그러나 2026년 새해 벽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가 이 북극의 섬을 세계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린란드를 덴마크로부터 사들이겠다”라는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북극을 둘러싼 강대국 경쟁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신호였다.
덴마크는 즉각 대노하며 반발했고, 무력 대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그런데도 이 사안이 국제외교 무대의 주요 이슈로 부상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단지 한 섬의 소유권 문제가 아니라, 21세기형 영토·안보·자원 전쟁의 전조이기 때문이다.
△ 북극의 거대 섬, 그러나 작은 인구
그린란드는 북극권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섬으로, 면적은 약 216만㎢에 이른다. 한반도의 약 10배에 달하는 이 땅에 사는 사람은 고작 5만 6천 명 남짓이다. 수도는 누크(Nuuk)이며, 현재 덴마크의 자치령이다.
18세기 이후 덴마크의 지배를 받아온 그린란드는 1979년 자치정부 수립, 2009년 자치권 확대를 거치며 입법·사법·내정에서 사실상 국가에 가까운 자율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외교와 국방만은 여전히 덴마크의 권한이다.
이 ‘절반의 독립’ 구조가 바로 지금 위기의 핵심이다. 그린란드는 스스로 국제사회와 조약을 체결하거나 외교 관계를 설정할 수 없고, 미국과의 문제 역시 덴마크를 통하지 않고는 논의할 수 없다.
△ 왜 미국은 그린란드를 노리는가
미국과 그린란드의 관계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덴마크가 독일에 점령되자, 미국은 그린란드를 사실상 보호령처럼 관리했다. 전후에도 미군은 철수하지 않았고, 현재 북서부에는 피투픽(Pituffik) 우주기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기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 조기경보, 미사일 방어체계, 북극 항공·우주 감시의 핵심 거점이다.
지리적으로도 그린란드는 코펜하겐보다 워싱턴에 더 가깝다. 북극해 항로가 열리고, 이른바 ‘빙상 실크로드’가 부상하는 상황에서 그린란드는 단순한 섬이 아니라 세계 전략의 교차점이 된다.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 진출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미국이 이 지역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 핵심 인사들의 발언도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린란드는 미국 것이어야 한다”라는 강경한 언급과, “목표는 침공이 아니라 매입”이라는 톤 다운된 설명이 교차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어떤 방식이든 미국의 전략권 안에 두겠다는 의지로 비춰진다.
△ 매입, 독립, 자유연합… 그리고 군사 옵션
현실적으로 미국이 그린란드를 ‘매입’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국제법상 자결권 원칙에 따라, 덴마크는 주민 의사에 반해 영토를 제3국에 넘길 수 없다. 그린란드가 미국으로 가려면 먼저 독립한 뒤, 주민투표로 귀속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그린란드 주민의 약 85%가 미국 편입에 반대했고, 찬성은 소수에 불과했다. 설령 정치적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미국 의회의 예산 승인과 상원 3분의 2 동의라는 높은 장벽이 기다린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자유연합협정(COFA)’이다. 이는 마셜제도 등 일부 태평양 섬나라들이 미국과 맺은 방식으로, 독립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의 군사 보호와 경제적 특혜를 받는 구조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주민들은 미국에서 거주·취업할 수 있다. 완전한 합병보다 훨씬 현실적인 선택지다.
그럼에도 모든 수단이 실패할 경우, 최종 군사적 옵션이 거론된다. 그린란드에는 자체 방위군이 없고, 덴마크의 북극사령부 병력도 매우 소규모다. 미국이 마음먹으면 핵심 시설을 단기간에 장악할 수 있다. 다만 이는 나토 회원국이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는 초유의 사태로, 동맹 체제 붕괴와 세계적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 북극에서 시작된 21세기형 패권 전쟁
프랑스·독일·폴란드 등 유럽 주요국들이 이 사안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덴마크가 요청할 경우, 유럽 군대가 그린란드에 배치되는 시나리오까지 검토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군사적 모험을 억제하기 위한 ‘사전 차단’ 전략이다.
그린란드에서 벌어지는 일은 북극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치령과 소국, 전략 요충지를 둘러싼 강대국의 압박과 흡수 시도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작은 섬 하나가 초강대국의 패권 경쟁 한가운데로 끌려 들어오는 이 장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더 이상 규범과 이상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빙하의 땅 그린란드는 지금, 냉전 이후 가장 뜨거운 지정학적 전선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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