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재입성한 지 1년이 되어간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폐기와 글로벌 리더십 복원'이라는 외교정책 기조를 철회하고 '전략적 선택과 집중' 및 '거래 중심적 동맹관'을 핵심으로 하는 '미국 우선 외교정책' 재활성화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이익을 공세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특히 서반구(Western Hemisphere)에 대한 지배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을 본격화하며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돈로 독트린'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전후로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운하 등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공세적인 행보를 빗대어 등장했다. 미국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대통령이 주창한 '먼로 독트린'과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결합된,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지배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기조를 나타낸다.
'먼로 독트린'은 먼로 대통령이 1823년에 천명한 미국 대외정책 기조로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간 상호 불간섭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미국은 19세기에 걸쳐 두 대륙 간 상호 불간섭 원칙을 유지했으며, 이후 먼로 독트린은 미국의 고립주의(isolationism)를 대표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말 발간된 트럼프 2기 행정부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는 미 본토 방어를 핵심으로 하는 서반구(아메리카 대륙) 안보와 중국 견제가 주가 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이 미국의 핵심 이익임을 명시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영향력 강화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했으며, 이러한 미국의 정책 기조는 최근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개입, 그린란드 획득 의지 등을 통해 빠르게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3일 '불법 이민자와 마약의 유입 차단'을 명분으로 감행된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행동은 석유 자원 확보, 중남미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축소 등이 실질적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또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의 일원인 덴마크의 자치령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그린란드를 얻고자 하는 것은 북극권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한편 석유, 천연가스, 희토류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베네수엘라, 그린란드 사태는 지정학적 그리고 지경학적 측면에서 상당한 함의를 지닌다. 우선 지정학적 측면에서 힘의 논리가 좌우하는 강대국 정치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실감케 해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상기한 NSS를 통해 더 이상 미국은 세계의 모든 지역과 문제에 동등하게 관여할 여력이 없으며, 자국의 핵심적인 국가이익인 서반구의 안보와 중국 견제에 집중하고 지역 내 안보 위협은 역내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이 주도적으로 대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및 그린란드 사태를 통해 미국이 안보 공공재를 제공하고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패권국 역할을 축소하고 자국의 핵심 이익에 보다 집중할 것임을 분명히 함에 따라 향후 국제 안보 질서는 각자도생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동시에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인도, 일본, 한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각자 지역 내 안보에 보다 집중하고 역할을 확대해 나가는 '안보의 분절화' 현상이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경학적 측면에서는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한 지역화·블록화 현상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미·중 경쟁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온쇼어링(onshoring)', 즉 핵심 원자재와 에너지의 안정적인 역내 공급과 핵심 제조 시설의 미국 내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및 그린란드 사태는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정치·경제적인 영향력 확대를 통해 안정적인 역내 공급망을 확보하고자 하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보여준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시도에 대응해 주요국들을 중심으로 지역 및 분야별 공급망 확보 노력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힘의 논리가 좌우하는 강대국 정치의 부활은 한국에 무엇보다 자강력(自强力)의 확보를 요구한다. 미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에 집중하기 위해 동맹국들에 지역 안보 부담을 지우는 상황은 안보 리더십 축소에 따른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점증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강대국 외교의 각축장인 한반도의 경우 안보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미동맹이 대체 불가능한 한반도 안보의 핵심 기제인 상황에서 우리의 역량 강화를 토대로 한미 간 안보 협력을 현실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군 전력의 첨단화와 효율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핵 주권 확보 등 자주 국방력 확립을 위해 매진하는 한편 한미동맹을 보다 대등하고 호혜적인 전략동맹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와 함께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주요국들과의 관계를 관리함으로써 우리에게 우호적인 세력균형을 동아시아에서 유지해야 한다.
한편, 지경학적인 지역화·블록화 현상에 대응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기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 10위권 내외의 군사력과 경제력,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 등 한국의 강점을 토대로 글로벌 협력을 복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첨단기술 및 전략산업 분야에서 미국 및 기술 선진국과 양자 및 (소)다자 협력을 강화해 미래 성장 동력 및 경쟁력을 담보하는 한편 수평적 협력 구조를 토대로 중국과 소비재, 서비스, 콘텐츠, 공급망 협력 등 실질적 분야의 협력 증대를 통해 경제적 이익 확보와 통상의 보폭을 넓혀야 한다. 또한 '포용, 상생, 연대'의 협력 원칙을 토대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중동, 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안정적·호혜적 핵심 광물 공급망을 구축하고 첨단기술, 개발협력, 에너지, 방위산업 등 실질적인 부문의 협력을 증대시켜 나가야 한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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