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행동의 핵심 동력 ‘감정’ …삶·세계 지배하는 숨은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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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핵심 동력 ‘감정’ …삶·세계 지배하는 숨은 엔진
라이프코드/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임다은 옮김/ 필로틱/ 2만2000원

놀이동산의 자동차 놀이기구에 앉아 핸들을 돌리는 아이는 자신이 운전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모든 작동이 레일 위에서 결정되어 있다. 독일의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뇌과학자 한스-게오르크 호이젤은 어른들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주체적으로 통제한다고 믿지만, 그 뒤에는 ‘감정’이라는 설계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라이프코드’는 인간을 이성적 존재로 규정해온 오랜 통념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다. 저자는 감정을 단순한 심리 반응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행동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라고 본다. 책에 따르면 생존과 번식이라는 원초적 목적을 바탕으로 우리의 뇌는 수억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고, 그 과정에서 형성된 감정 시스템은 오늘날 우리의 성격, 소비 습관, 정치적 판단, 예술적 취향까지 좌우한다.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임다은 옮김/ 필로틱/ 2만2000원 저자는 삶과 세계를 지배하는 이러한 감정 프로그램에 ‘라이프코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30여년간 뇌과학과 호르몬을 연구해온 그는 감정이 의사결정과 성격 형성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쉽고 정교하게 풀어낸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감정의 영향력을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정치적 영역까지 확장해 설명한다는 데 있다. 그는 정치적 선택 역시 이성적 판단의 결과라기보다, 무의식적 감정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민주주의는 다양한 권력 분산 장치를 통해 인간 내면의 지배 욕구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심리학적 분석을 넘어선 현대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로 읽힌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감정이 이주, 혁명, 전쟁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어떻게 촉발했는지 탐구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감정적 기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면, 결국 삶의 다양한 경험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감정의 레일 위를 달리는 중일지 모른다. ‘라이프코드’는 그 레일의 구조를 해부하고, 우리 안의 숨은 엔진을 직시하게 하는 안내서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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