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수만 적을 막는다?”… 기술에 가려진 국방의 진짜 문제 [박수찬의 軍]

글자 크기
“AI가 수만 적을 막는다?”… 기술에 가려진 국방의 진짜 문제 [박수찬의 軍]
이재명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군 안팎에서 파장을 낳고 있다.

이 대통령은 21일 페이스북에 “인공지능(AI) 전투로봇, 자율드론, 초정밀 공격·방어 미사일 체계를 구비한 50명이면 수천, 수만의 적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상작전사령부 드론봇전투단 장병들이 정찰을 위해 드론을 투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대통령은 “중요한 건 이런 군사력, 국방력, 국력을 가지고도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각의 굴종적 사고”라고도 말했다.

AI·무인 기술을 앞세우면 전략적 우위를 과시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미래 안보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유연하면서도 견실한 국방 정책과 전략, 군사력 육성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결국은 사람이 전쟁을 끝낸다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술 발전으로 AI는 표적을 스스로 인식·타격하는 것을 넘어서 전쟁 시나리오를 실시간 분석해 지휘부에 제공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 테크 기업 팔란티어는 AI 기반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있다.

위성, 정찰 드론, 스파이 등이 제공한 정보를 실시간 종합·분석해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지뢰 탐지와 정밀 타격 등 군사 작전을 지원한다.

지난해 9월 25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사족보행 로봇과 드론 등이 포함된 유·무인 전투제대가 분열을 실시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적군과 민간인을 판별하기 위한 ‘라벤더’ 등을 사용해 작전을 펼치고 있다. 북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AI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킬 것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이를 보면 ‘보이지 않는 위협’인 알고리즘 간의 대결이 전쟁의 핵심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군사학의 대가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저서 ‘전쟁론’에서 수적 우세를 전쟁의 기본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클라우제비츠는 수적 우세를 시공간과 결합해 전략적 우위를 점하고 승리를 얻을 수 있는 핵심 요소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라우제비츠의 주장은 ‘전쟁론’이 출간된 지 약 2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우크라이나는 드론과 AI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만, 불리한 전세를 뒤집지 못한 채 전선에서 조금씩 밀리고 있다. 러시아보다 병력이 부족해 소모전·장기전에 취약해진 탓이다.

수적 우위에 있는 러시아는 북한군까지 투입해 쿠르스크 일대를 탈환했고, 우크라이나에서도 점령지를 넓히고 있다.

육군 부사관이 폭발물 탐지로봇을 조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스라엘도 AI 기반 표적 식별과 드론 타격을 지속했지만, 시가지가 많은 가자지구에 대규모 지상군 투입이 불가피했다.

AI·드론이 중요하지만, 인간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충분한 상비 병력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이같은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은 상비병력 유지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어렵다. 심각한 저출생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995년 1.63명에서 2024년 0.75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합계출산율 저하는 병역 자원 감소로 이어진다. 한국군 상비 병력이 50만 이하로 떨어지고, 해체·통합되는 부대가 속출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합계출산율이 극적으로 반등하지 않는 한 전통적 방식으로 북한군에 수적 우위를 차지하기는 어렵다.

질적 우위를 추구하는 방법이 있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할 정도의 질적 우위를 확보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군사력은 병력·기술의 결합이다

한국군 병력과 군 규모 감축은 전통적 방식에 의한 수적 우세 확보를 어렵게 한다. 이는 북한군에 결정적 우위를 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육군에서 운용하는 드론이 지상에서 이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선 중에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곳을 신속·정확하게 지정하고, 그곳애 병력과 장비를 적절한 시점에 빠르게 전개, 순간적인 수적·질적 우위를 만들어 전투를 치르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전략이 좋은 예다. 그는 여러 갈래로 진군하는 적군을 사전에 파악, 프랑스군의 압도적인 기동력으로 더 많은 군대를 신속하게 집결시켜 빠르게 몰아쳐 승리를 거뒀다. 일종의 기동방어다.

현대전에서 이같은 전략을 위해선 AI와 고성능·고용량 네트워크 구축이 필수다.

육군 K-1 전차들이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다양한 수단을 통해 수집된 북한군 동향을 실시간 분석, 지휘관과 참모에게 북한군의 향후 예상 움직임을 알려주고 대응책까지 정확하게 제시하는 ‘AI 사령부’가 필요하다.

북한군 움직임을 신속·정확히 파악해야 병력과 장비를 집결할 장소와 시점을 설정할 수 있다.

일선 부대가 수집한 영상·음성 정보의 질을 높이는 ‘AI 정보부’도 갖춰야 한다. 다수의 일선 부대가 수집한 영상·음성 정보를 상급부대가 모두 전달받아 보정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정보 지연은 신속한 기동이 최우선인 기동방어에선 치명적 문제다.

일선 부대가 AI로 노이즈를 제거해서 상급부대와 공유하면, 정보 생성 시간이 대폭 단축된다.

교전과정에서 가시선 너머의 표적을 포격하거나 자폭드론으로 파괴하려면, 고해상도 영상이 필수다. 기술의 발달로 무인정찰기의 해상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서 자료 확보는 가능하다.

육군 장병들이 K-21 장갑차에서 하차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문제는 미가공 이미지(raw image) 용량이 기존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처리 용량보다 더 커질 경우다.

이럴땐 중간 단계에서 이미지를 보정하고 제한된 용량을 지닌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서 일선 부대로 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같은 지연은 정보 가치를 떨어뜨린다.

고성능·고용량 네트워크를 통해 거리나 지형에 관계없이 실시간으로 고해상도 영상 등의 정보를 일선 부대가 수신하고, 수신한 부대에서 AI로 빠르게 보정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장병 개개인의 전투능력을 높이는 고강도 훈련도 필수다.

제병협동 전투는 모든 병과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면서 진행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숙련된 장병들이 있어야 효과적으로 전투를 치른다.

군 규모가 감소하면서 일선 부대의 책임 영역도 확대되고 있으므로, 예하 부대들이 넓은 지역에 흩어져서 움직이다가 적군의 의도에 대응해 신속하게 병력과 장비를 집중해서 적을 압도할 수 있는 집결 능력도 키워야 한다.

이같은 능력이 부족한 군대는 큰 대가를 치렀다.

18일 충남 계룡대 활주로 일원에서 열린 2025 계룡군문화축제·지상군페스티벌에서 제병협동전투시범이 펼쳐지고 있다. 계룡=뉴스1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창기 대규모 침공작전 과정에서 부대 및 병과간 협력, 보급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휘부는 넓은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지상작전을 조율하지 못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군 드론과 대전차미사일에 큰 피해를 입었다.

한국군이 신속한 전개와 강력한 전투능력을 함께 발휘하려면, 부대원들이 숙련된 상태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교리·훈련·장비 현대화가 필수다.

지휘관과 각급 부대는 정찰, 지휘통제, 전자전, 방공, 드론, 대드론, 화력, 기동 등 모든 군사역량과 신기술을 통합해서 신속하게 이동하고 교전하는 제병협동 전투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모든 전투기능을 최고 수준까지 발휘하는 고강도 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지휘관과 장병들에게 현대전의 교훈을 반영한 복잡하고 강도높은 전투 시나리오를 다수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는 능력을 높이도록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 교리 확립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18일 충남 계룡대 활주로 일원에서 열린 2025 계룡군문화축제·지상군페스티벌에서 제병협동전투시범이 펼쳐지고 있다. 계룡=뉴스1 첨단 기술을 도입해도,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마련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이를 위해 각급 부대가 새로운 전술을 시험할 수 있도록 장려해서 교리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장비 현대화도 서둘러야 한다. 육군 K-2 전차와 K-21 보병전투차, 차륜형장갑차 등은 현 시점에선 우수하다. 하지만 미래전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지는 불확실하다.

화력과 방호력 및 기동성을 높이면서도 경량화를 달성할 수 있는 차세대 전차와 장갑차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1대의 유인 차량에서 다수의 다목적 무인차량을 통제하는 유·무인 복합체계 개발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교단의 질적 향상이다.

전장은 적군과 싸우는 부대의 지휘관 결정에 따라 언제든 바뀐다. 일선 지휘관의 능력과 결정에 따라 전쟁 양상도 변화할 수 있다.

경기 파주시 무건리 훈련장에서 25사단 장병들이 다목적무인차량을 선두로 의심시설로 진입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AI 등의 발달은 장교가 접하는 정보의 양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면, 장교의 지적 능력과 판단력 및 전문성을 높여 숙련된 간부로 육성해야 한다. 철저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대목이다.

유사시 현장 지휘관 및 참모의 판단과 AI 판단이 크게 엇갈릴 수 있다. AI가 과도하게 반응해 불필요한 문제를 초래할 위험도 있다.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려면 장교들이 유연하면서도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평소의 훈련과 공부, 경험을 통해서 축적할 수 있다.

한국군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메시지가 아닌 ‘게임 체인저’ 수준의 국방개혁이다.

병력과 기술의 특성을 결합하고, 군 내 모든 분야를 혁신하며 전문성을 높이는 전략적 리더십을 갖춘 국방개혁을 통해 군사력의 본질을 강화하는 것이 필수다.

기술 만능주의나 섣부른 정치적 구호에서 벗어나 군의 본질을 추구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HOT 포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