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전략/ 비어트리스 호이저/ 이혜진 옮김/ 21세기북스/ 1만9900원
“명석한 지도자들이 왜 파국적인 실수를 저지를까?” 대체로 전쟁사나 군사학을 다룬 책은 승리의 순간에 주목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사례는 영웅적 장군의 지혜와 대담한 실행으로 포장됐다. 국제정치학자이자 군사전략 권위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러한 익숙한 서사를 뒤집는다. 전쟁사와 전략사를 ‘성공의 역사’가 아닌 ‘실패의 역사’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이는 전쟁에서 승리보다 패배와 실수가 훨씬 잦았음을 뜻한다. 역사 속 수많은 패전이나 참극은 뛰어난 전술이나 강력한 군사력 부족이 아니라 이념이나 욕망에 사로잡힌 지도자의 오판 결과였다는 것이다.
스탈린은 1941년 히틀러가 자신과 같은 합리적 판단을 할 것이라는 ‘거울 이미지’ 오류(자신을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에 빠져 독일의 소련 침공 가능성을 무시하다 그해 6월 독일의 기습공격을 받게 됐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똑똑한 리더들의 오판의 역사 근저에는 상대방이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 가정하는 ‘거울 이미지’ 오류,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만을 취사선택하는 ‘확증편향’ 등 인지적 오류가 자리하고 있다며 역사 속에서 구체적 사례를 제시한다. “1941년, 스탈린은 히틀러가 자신과 같은 합리적 판단을 할 것이라는 ‘거울 이미지’ 오류에 빠져 독일의 소련 침공 가능성을 무시했다. 영국 정부의 경고를 포함해 독일의 침공 준비를 알리는 첩보원들의 보고서를 100건 넘게 받았지만 모두 묵살했다. 스탈린만 그랬던 게 아니다. 당시 독일군이 동쪽으로 병력을 증강하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가 있었음에도, 소련 주재 영국 대사조차 “그건 미친 짓”이라며 침공 가능성을 일축할 정도였다. 결국 1941년 6월22일, 독일은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해 소련을 기습공격했고, 이는 역사상 최악의 분석 실패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처럼 상대방도 나와 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인지 편향은 치명적인 전략적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이는 저자가 말하는 ‘거울 이미지’ 오류에 빠진 스탈린의 뼈아픈 실패다.
비어트리스 호이저/이혜진 옮김/21세기북스/1만9900원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예측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사례도 있다.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이스라엘이 예측하지 못한 배경에는 ‘기준점(anchoring) 편향’ (최초의 결론에 이후 관찰된 증거들을 끼워 맞추는 편향)이 있었다. 이스라엘 정보부는 하마스가 과거와 달리 가자지구 통치에 집중하는 ‘정상적인’ 정당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초기의 해석을 기준점으로 삼았다. 2022∼2023년 초 이스라엘이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공격했을 때 하마스가 개입하지 않자, 그런 믿음은 더욱 강해졌다. 그 결과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하마스가 이스라엘 탱크와 군사기지 모형을 공격하는 훈련을 하는 등 명백한 공격 징후들을 포착하고도 ‘하마스는 공격 의사가 없다’는 기존 기준점에 맞춰 이를 무시해 버렸다. 이처럼 한 번 형성된 첫인상이나 판단이 이후의 정보 해석을 지배하게 되면 명백한 반대 증거조차 외면하게 되어 치명적인 안보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1차 걸프전쟁은 ‘왜곡된 외교 신호’의 비극적인 사례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발한 제1차 걸프전쟁은 미국의 외교적 메시지를 사담 후세인이 오해하면서 촉발됐다. 침공 직전, 에이프릴 글래스피 주이라크 미국 대사는 사담 후세인에게 “미국은 아랍국가 간의 국경 분쟁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외교적 중재를 통해 해결하기를 촉구한 것이었지만, 사담 후세인은 미국이 침공을 승인하리라는 ‘청신호’로 해석했다. 결국 그는 일주일 뒤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이는 미국의 주도로 41개국이 참전하는 대규모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외교적 소통에서 생기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나 문화적 오해는 한쪽의 의도와 전혀 다른 파국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저자는 “완벽한 전략은 없다. 전략은 언제나 불완전하며, 실패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줄이고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다. 이는 전쟁뿐 아니라 현대사회의 모든 정책 결정과 기업 전략에도 적용 가능한 교훈”이라고 설명한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