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제국 쇠망사/ 헨리 지/ 조은영 옮김/ 까치/ 1만9800원
2022년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중국의 인구(14억명)가 1961년 이후 61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그동안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던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데이터여서 많은 이들이 깜짝 놀랐다.
저명한 고생물학자 헨리 지는 인간이 지금의 궤도를 바꾸지 않는 한 지구상에 존재해온 모든 생명체가 겪어온 운명처럼 결국 멸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절멸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선 새로운 진화적 다양성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우주 식민지 개척에 본격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인류의 행성 탐사 상상도. 게티이미지 이뿐만이 아니었다. 유엔은 ‘세계 인구전망 2022’ 자료에서 세계 연간 인구성장률이 1964년 2.24%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감소해 0.88%에 그쳤고, 세계 인구 역시 2086년에 104억명에서 보합세를 보이다가 점차 줄어들 것으로 관측했다. 심지어 미국 워싱턴대 보건 계측 및 평가 연구소의 크리스토퍼 머리 교수팀은 세계 인구 추세를 분석한 결과, 인구 증가의 반환점은 유엔 예상보다 20년 빠른 2064년이 될 것이고, 이때 97억명에서 성장을 멈춘 뒤 2100년이면 87억명으로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고도 했다. 급격해질 인구 감소와, 지구촌 곳곳에서 확연히 나타나고 있는 기후위기, 각종 전염병, 자원 고갈까지 겹치면서 바야흐로 인간의 존속 자체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과연 31만년 전 지구에 등장했고 약 4만년 전에 라이벌 종들을 제압하며 ‘유일한 인간 종’으로 자리 잡은 호모사피엔스에게 절멸의 위기가 다가온 것일까. 근본적으로 호모사피엔스는 멸종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헨리 지/ 조은영 옮김/ 까치/ 1만9800원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을 수상한 저명한 고생물학자인 저자는 그동안 역사에서 정점에 오른 생물은 멸종을 피할 수 없었다며 인간 역시 지금의 궤도를 바꾸지 않는 한 지구상에 존재해온 모든 생명체가 겪어온 운명처럼 결국 멸종할 것이라고 답한다. “만약 호모사피엔스가 작금의 상태를 유지한다면 기대할 것은 멸종뿐이다… 환경 파괴? 핵전쟁 또는 생화학 전쟁? 세계 기근? 또다른 팬데믹? 인공 지능? 암살 로봇? 좀비 대재앙? 원인이 무엇이든 호모사피엔스의 멸종은 다음 1만년 이내에, 지질학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금시일 내에 찾아올 것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인간이 맞이할 쇠락과 몰락의 길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생명체와 다른 예외적인 성취를 해온 호모사피엔스라면 악화일로로 치닫는 필멸의 길 위에서 과연 탈출할 수 없는 것일까.
저자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인간이 현재 또는 미래에 직면할 문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할 단서로서 인간이 과거 다른 종이 넘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고 지구 자원을 독점하며 지배적인 종이 될 수 있었던 과정을 면밀히 추적한다. 이는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의 번영이 쇠퇴를 무르익게 했다”며 로마의 정점이던 2세기 트라야누스 치하에서 ‘로마제국 쇠망사’를 서술했던 것에서 힌트를 얻은 바였다. 책 제목이 ‘인간제국 쇠망사’인 이유이다.
“모든 경쟁자가 제거되면 그때부터 침체가 시작되고 종은 외부 환경뿐 아니라 내부에서 작용하는 힘에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에드워드 기번이 기술한 로마제국이 그랬고, 현생 인류가 그렇다. 이 책에서 호모사피엔스의 쇠퇴가 기록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 저자는 이에 따라 먼저 호모사피엔스의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 인간 계보의 기원과 직립보행으로 이어진 진화의 양상을 살펴본 뒤, 인간이 수많은 친척들을 밀어내고 ‘최후의 인간 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현생 인류가 유일한 승자가 돼 지구 자원을 독점하게 된 사건들이 호모사피엔스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의미를 갖는지를 분석한다. 즉, 1만년 전 농업혁명과 18세기 산업혁명, 20세기 녹색혁명과 유전자혁명 등은 인간에게 풍요와 인구 증가를 가져다줬지만, 동시에 건강 악화, 사회적 불평등 심화, 작물의 다양성 감소 등 예상치 못한 문제를 야기했고, 여기에 바이러스와 심각한 전염병, ‘인류세’라고 불릴 정도의 기후위기 역시 야기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복합 위기 속에 출생률의 감소와 정자 수의 감소 등이 겹치면서 인구 증가 정체현상이 나타났고, 금세기 말에는 급격한 인구 감소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결국 지금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간의 추락은 불가피하고 최종적으로 맞이할 운명은 앞으로 1만년 이내의 절멸뿐이라고 역설한다.
“나는 당신의 자리가 인류 역사의 시작보다는 종말에 훨씬 더 가깝다고 주장하겠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호모사피엔스는 1만년 안에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하겠다. ”
그렇다면 절멸이라는 운명 앞에서 우리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나 대응책은 없는 것일까. 저자는 “있다”고 자신 있게 답한 뒤, 인류가 절멸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선 반드시 새로운 진화적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인간의 진화적 다양성은 이미 지구 안에서는 단일 개체군으로 묶여 있기에 결국 지구 너머 우주에서 이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달이나 화성, 혹은 태양계 너머에서 고립된 개체군으로 살아가며 새로운 종으로 분화해 가야 한다는 얘기다.
“내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주 식민지 개척이다. 달이나 화성 같은 태양계 다른 전체의 표면이든, 소행성의 내부든, 또는 완전히 인위적인 궤도에 오른 서식지든 상관없다. 그간 인간이 보여준 뛰어난 창의력을 전제하면, 화성이나 금성과 같은 행성을 ‘테라포밍’(행성의 환경을 지구와 비슷하게 만드는 기술)해서 특수한 호흡장치나 우주복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 수도 있다. 혹은 인간의 유전체를 왕창 편집해서 불리한 형질을 제거하고, 수중 호흡이나 무중력 상태에서 장기적으로 버티는 능력 등 바람직한 형질은 키워서 자연적으로는 동화되지 못할 극한의 조건에서도 스스로 살아남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
인류는 이미 200만년 전 호모에렉투스가 최초의 호미닌으로 아프리카를 떠나 지구적으로 한 차례 퍼져 나갔고, 다시 10만년 전부터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지구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인류는 이제 절멸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세 번째 대이주에 나서야 하는 것일까. 다소 ‘할리우드적 결말’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다 보면 고개가 조금 끄덕여질지도.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