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있다 [詩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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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여자는 방금 장례식장에서 어린 딸을 고이 보냈다 묵주만 자꾸 굴리면서 입성이고 뭐고 추레해져서 여자는 누군가를 간신히 부른다 딸의 이름은 아니지만, 귀 기울이면 여자는 엄마 엄마를 되풀이한다 바짝 말라버린 하천을 맨발로 뛰어가면서 미간을 찡그리고 엄마를 부른다 딸아이가 자신을 부르는 것처럼 엄마 엄마, 입찬소리를 되풀이한다 엄마 속에 여자의 딸과 여자의 엄마와 딸의 엄마가 번갈아 나타난다 붙잡거나 저미거나 어루만지며 사무치던 엄마가 오롯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시집 ‘습이거나 스페인’(문학과지성사) 수록

●송재학
△1955년 영천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활동 시작. 시집 ‘얼음시집’,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 등 발표. 소월시문학상, 전봉건문학상, 목월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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