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들이 올해 7월에 이어 지난달에도 '바이 아메리카'를 외쳤다. 국내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잠잠해진 사이 서학개미들의 미국 주식 보유 규모는 200조원 시대에 한 걸음 다가선 모습이다.
2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SEIBro)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지난달 미국 주식 6억4000만달러(약 8900억원)를 순매수했다. 지난 7월(약 6억8500만달러)에 이어 2개월 연속 순매수다. 올해 7~8월 동학개미들이 유가증권시장에서 7조1000억원가량을 팔아치운 것과 대조적이다.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보유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었다. 이들의 지난달 월간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1362억달러(약 189조원)를 넘어서며 1400억달러(약 195조원) 돌파를 눈앞에 뒀다. 미국발 관세 리스크가 불거졌던 지난 3월에는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약 965억달러)이 1000억달러를 밑돌기도 했으나, 이후 꾸준히 상승해 5개월 연속 몸집을 불렸다.
테마주 공격 베팅…부동의 '최애주' 테슬라,서학개미들의 투자 트렌드도 변화했다. 올해 1분기만 하더라도 테슬라와 이를 2~3배의 주가 변동률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들이 장바구니를 장악했지만, 최근에는 유나이티드헬스그룹, 비트마인 이머전 테크놀로지스 등 개별 호재를 등에 업은 테마주들이 위용을 떨쳤다. 다만 보관금액 기준으로는 테슬라가 218억달러(약 30조원)로 집계되며 여전히 서학개미 '최애주'임을 증명했다.
그중에서도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은 서학개미들이 지난달에만 3억1570만달러(약 4390억원)어치 넘게 사들이며 월간 순매수 1위에 올랐다. 미국 최대 건강보험업체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은 의료비 지급금 증가에 따른 실적 악화, 갑작스런 경영진 교체, 미 사법당국의 조사 등 지난 4월 이후 잇따른 악재로 주가가 연고점 대비 반 토막이 났음에도 워런 버핏의 지분 매입 소식이 알려지며 매수세를 끌어모았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올해 상반기 사들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 주식은 약 16억달러(약 2조2000억원)에 달한다.
서학개미들은 상장한 지 얼마 안 된 기업들에도 공격적인 베팅을 했다. 지난달 순매수 2위(2억5277만달러)를 기록한 비트마인은 세계에서 이더리움을 가장 많이 보유한 가상자산 채굴 업체로, 지난 6월 아메리칸 뉴욕거래소에 입성한 새내기다. 상장 후 한 달 만에 주가가 3900%가량 치솟았으나 현재는 고점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한 상태다. 이밖에 엔비디아(1억7609만달러), 인공지능(AI) 기반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피그마(1억7522만달러), 소형모듈원전(SMR) 기업 뉴스케일파워(1억4887만달러)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김한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투자자의 투자 행태는 기관 등 전문투자자 대비 높은 지역별 및 종목별 편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며 "특히 해외상품 직접투자를 통해 국내법상 허용되지 않고 있는 고위험 파생상품 투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들끓는 AI 버블론…서학개미 '야수 모드' 괜찮을까최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AI 업계 거물들 사이에서 버블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미국 증시를 향한 서학개미들의 낙관론은 거둬지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 AI 소프트웨어 기업 팰런티어의 경우 AI 거품론에 지난달 주가가 20% 넘게 빠졌지만, 이를 저가 매수의 기회로 인식한 서학개미들은 지난달 22~28일 팰런티어 주식을 1억1677만달러어치(순매수 1위) 사들이기도 했다.
김승혁 키움증권 연구원은 "4월 해방의 날 이후 미국 증시가 조정 없이 강한 상승 랠리를 이어오면서 차익 시현에 대한 부담이 상존하는 상황"이라며 "단기적으로 대형 주도주 중심의 강한 상승이 지속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기업들의 주가 탄력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주도 테마 내에서 상대적으로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이 크지 않거나 금리 인하 수혜가 큰 기업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9월 S&P500 예상 밴드는 5200~6700으로 제시했다.
지나친 낙관론을 향한 경계의 목소리도 있다. 강현기 DB증권 연구원은 "세간에서는 금리 인하가 이뤄지면 주가가 상승한다는 믿음이 존재하지만, 이는 경기 악화에 앞서 금리 인하가 선제적으로 이뤄졌을 때 타당하다"며 "경기 부진 이후 금리 인하가 후행적으로 이뤄지면 주가는 내려간다. 이와 같은 시기에는 금리 인하가 당장 경기를 올려세우지 못한다는 것을 시장이 인식하며 주가가 펀더멘탈을 좇아 하락한다"고 설명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