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대통령의 자리, 무대 아닌 발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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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 대통령의 자리, 무대 아닌 발코니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전 국민 대청소 운동’ 제안이 불러온 갑론을박은 그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모든 현안을 직접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의 성실함이 과연 21세기 복합 위기 시대에도 유효한 덕목인가?

하버드대 로널드 하이페츠 교수의 ‘적응적 리더십’은 이 질문에 깊은 통찰을 준다. 그는 리더가 직면한 과제를 기존의 지식과 권위로 해결 가능한 ‘기술적 문제’와 구성원의 가치관과 행동 변화를 통해서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적응적 도전’으로 구분한다.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이 대통령의 리더십은 모든 과제를 ‘기술적 문제’로 보고 ‘내가 답을 아니,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장관들을 수동적 존재로 전락시키고 결국 조직의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고갈시키는 지름길이다.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늘어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현장의 복잡한 신호는 무시되고 잠재된 위험은 보고되지 않는다. 결국 창의적 대안은 사라지고 ‘지시 이행’에만 급급한 조직은 예측 불가능한 위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성공한 지도자들은 달랐다. 로널드 레이건은 ‘위대한 소통가’로서 국가의 큰 방향에 집중하며 장관들에게 권한을 위임했고, 아이젠하워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격렬한 정책 토론의 장으로 만들어 최선의 결정을 이끌었다. 독일의 메르켈 전 총리가 대화와 타협으로 연정을 이끌고, 넬슨 만델라가 자신을 핍박했던 백인 정당까지 내각에 포함시킨 것 또한 권한의 공유가 위기를 극복하는 힘임을 증명한 사례다.

진정한 리더십은 ‘발코니에 오르는 것’에서 시작된다. 춤추는 무대에서 벗어나 발코니에서 전체 흐름을 조망하듯, 대통령은 현안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직면한 근본적인 ‘적응적 도전’이 무엇인지 진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의 책임을 내각과 국민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Giving work back to people). 이는 책임 회피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스스로 해법을 찾도록 역량을 부여하는 고도의 리더십 행위다.

이 과정에는 익숙한 것을 버려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리더의 역할은 이 고통을 회피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감당할 수준으로 ‘고통의 온도를 조절하며’ 문제의 본질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책임을 되돌려주는 것’은 방임과 다르다. 오히려 장관들이 각 부처의 ‘작은 대통령’으로서 소신껏 정책을 펴고 결과에 책임지도록 판을 짜주는 고도의 통치 행위다. 대통령은 최종 결정의 부담을 나누는 대신, 부처 간 충돌을 조정하고 국가 전체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제 만기친람의 유혹을 넘어, 장관들에게 권한을 과감히 위임하고 더 큰 시야에서 국가의 ‘적응’을 이끄는 리더의 모습을 보여줄 역사적 책무를 안고 있다. 그 길은 당장 더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공직 사회가 창의성을 발휘하고 국민이 국정의 주체로 나설 때, 대한민국은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회복 탄력성을 갖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홀로 짐을 짊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짐을 나눌 수 있도록 판을 짜는 ‘발코니 위의 지휘자’ 자리여야 한다.

김호균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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